창업 1세 기업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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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세 기업인 이야기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6.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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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IAL REPORT : 창업 1세 기업인 이야기


“돈을 따른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따라왔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비약적인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가 놀랄 만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중심에는 ‘재벌’ 이 있다. 물론 국가와 기업의 철저한 정경유착, 대기업 중심의 몰아주기 경제개발, 엄청난 물량의 차관지원,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 정책 등 재벌의 성장에는 현대사의 아픈 기억도 함께 한다.

1950년대 한국경제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 시기 등장한 대자본가들은 사라진 자본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재벌로 성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재벌들은 제 3공화국인 63년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 계획에 들어가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70년에 이르러서는 10대 기업의 뼈대가 그려지는 시기다. 삼성의 식품 석유 전기, 럭키의 화학 정유, 한진의 항공 운수, 쌍용의 시멘트, 현대의 건설 자동차, 한국화학의 화학 정유, 극동의 조선 해운 등이 대표적인 기업과 주력 사업이 됐다. 설탕, 면방직, 밀가루인 삼백산업이 중심이었던 50년대에 비해 건설 화학 운수 조선 등의 산업이 부상했다.

이들 기업의 창업 1세대 이야기는 때로는 전설처럼, 신화처럼 한국경제의 산 역사가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땅,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한 창업 1세들의 창업기는 바로 다름 아닌 영욕의 한국경제사라고 할 수 있겠다.


미곡상 배달부에서 최고 기업인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창업 1세대의 첫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인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있다.

그는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살이로 10세 무렵부터 농사일을 하다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한 끝에 소 판돈을 몰래 훔쳐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1937년 9월 경일상회라는 미곡상 배달부를 거쳐 사업을 시작했다.
정회장은 천부적인 근면함과 수완으로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고,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47년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했다. 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고 71년부터 현대그룹 회장을 지냈다.

모든 것이 국내 최초이던 시절. 안되는 일을 되게 만들어내고야마는 정회장의 성격을 보여주는 많은 예화들이 있다. 서산 간척사업 당시 빠른 유속을 감당하지 못해 흙이 다 떠내려가자, 낡은 유조선으로 둑을 만들어 물길을 막은 ‘유조선 공법’이나, 전후 복구사업을 따내기 위해 한겨울 파란 잔디 대신 파란 보리를 옮겨다 심어 미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도 하는 등 수많은 ‘왕 회장’(정주영 회장의 생전 별명) 의 이야기는 이제 ‘정주영학’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엘리트 코스밟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정주영 회장이 가난한 농사꾼에서 자수성가한 스타일이라면 고 이병철 회장은 당시 시대의 엘리트였다.

경상남도 의령(宜寧)에서 천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고생없이 성장기를 보냈다.

중동중학을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가 1934년 중퇴했다.

이병철씨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26세가 되던 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세우면서부터다. 38년 3월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그룹 모체는 3만원 자본금
삼백산업이 호황이던 50년대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53∼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해 갔다. 이처럼 차리는 사업마다 대성공을 거두자 ‘돈병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64년 동양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과 65년 <중앙일보>를 창설해 언론사 경영에 참여했으며 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삼성그룹의 토대를 만들었다.
74년 삼성석유화학·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했고, 이후 용인자연농원·삼성정밀 등을 설립했다. 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했다. 이밖에도 문화재단·장학회 등을 설립했고,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도 참가해, 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플라스틱 시대 연 구인회 LG 그룹 회장


LG 그룹 구인회 회장은 1907년 경남 진양군에서 출생했다.

그가 14세가 되던 해 구씨 집안은 이웃의 천석꾼 집안인 허씨 집안과 혼인을 맺게 되고 LG 그룹은 이 두 집안이 함께 일으킨 그룹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보에 진학했다가 고향에 돌아와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했다.

1931년 아버지가 마련한 사업자금으로 ‘구인회 상점’ 이라는 포목상을 차리고 사업이 번창해서 주식회사를 발행하는 ‘주식회사 구인사회’를 설립해 근대적인 경영체제를 갖춰나갔다.

‘전자’하면 ‘금성’
45년 해방이 되자 부산으로 진출, 무역회사를 차리고, 화장품 판매와 제조업에서 번 돈을 플라스틱 제조회사 ‘락희산업’에 투자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54년 ‘락희산업’은 국내최초 치약을 생산한 데 이어 세탁비누, 화장비누, 가루비누를 생산했다. 67년에는 국내 최초로 샴푸도 개발해 냈다.
이처럼 치약, 세제, 화장품 업계를 석권하면서 자회사 금성사를 설립했다. 금성사는 59년 라디오, 60년대는 선풍기, 61년에는 자동전화기를 최초 생산해 ‘전자’하면 ‘금성’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었다. 이후 2대 그룹 구자경 회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LG 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트럭 한대에서 출발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우리나라 수송산업의 주역을 담당한 한진은 대한항공, 한진해운 등 육해공 종합 물류 그룹이다.

그러나 한진 그룹의 시작은 트럭 한대에서 출발했다. 조중훈 회장은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장기는 순탄하게 보냈지만, 진학은 부친의 사업실패로 학비가 들지 않는 진해 해원양성소(현 해양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졸업 후 일본의 한 조선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다가 선원이 됐다. 이후 조회장은 귀국해 정비공으로 일하다가 해방을 맞이한 45년 그동안 모은 돈으로 트럭한대를 구입하고 ‘한진상사’라는 운수업체를 차렸다.

당시 운수업은 천한 직업으로 여겨 경쟁이 심하지 않았고 자연히 수입도 좋았다. 그런 가운데 트럭 대수를 점차 늘려가던 한진상사는 56년 미군 군수품 수송 계약을 하면서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65년에는 한국항공을 설립하고 66년 월남전쟁을 계기로 미국 국방성과 교섭 끝에 월남 진출 허가를 따냈다. 그 뒤 한진상사를 ‘월남재벌’, ‘월남상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공한 것은 월남 육상수송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69년 국영 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현재 대한항공은 세계 항공업계 10위 안에 드는 항공회사로 성장했다.


비누공장으로 출발한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 회장은 1939년 작은 비누공장으로 시작으로 사업계에 진출해 거대 그룹의 기반을 쌓아 아들에게 물려준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성곤씨는 191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보성고보, 보성전문학교(현재 고려대)를 졸업했다.

졸업후 고향에 돌아와 대구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김회장의 목표는 사업가였다.

이후 그는 대구상공은행(상업은행 전신)으로 직장을 옮기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모든 월급을 교제비로 썼다고 한다. 이후 이렇게 쌓은 인맥은 쌍용을 창업하는 데 좋은 발판이 됐다.

39년 김회장은 은행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인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던 것을 인수해 비누제조업체인 삼공유지를 설립한다. 물비누가 개발된 것을 계기로 사업은 번창했다.

이때부터 대구 상공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본격적인 기업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금성방직을 설립한다.
그동안 정계활동이 왕성했던 김 회장은 62년 불입자금 3억원으로 쌍용양회를 설립하고 생산품이 나오자마자 주한 미군에 납품을 하면서 초기부터 호조를 보였다.

시멘트에서 성공한 후 이번에는 석유로 진출했다. 이후 삼화제지, 쌍용해운, 쌍용건설, 쌍용산업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작은 비누공장에서 시작한 그였다.

[한경리크루트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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