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 인권의 사각지대 실업고 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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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 인권의 사각지대 실업고 현장실습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8.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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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IAL REPORT : 전문가 기고


인권의 사각지대 실업고 현장실습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이 과연 교육적 효과가 있느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현장실습제도의 인권침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아직 어린 학생이고 미성년자인 실습생에게 일할 의무만 지우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현장실습 기간 중 기업체의 기물파손 등 물적 손실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배상 책임진다는 규정’과 ‘현장실습 중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등의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6월 12일 전교조와 참여연대는 “현장실습제도가 파행운영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차별대우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나 교육청은 실습생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그간 배우고 익힌 ‘기술’을 직접 (노동)현장에 나가 ‘실습’해 보면서 새롭고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말이 그럴 뿐이다. ‘산학협동’이란 미명 아래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지난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현장실습이 자기 이름에 걸맞은 본래 취지대로 실행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 학생들의 인권보호 시급
문제는 이 기간이 학생들에게 현장학습이나 직장체험의 경험이 되기보다는 학교의 보호나 기업내 노조의 관심에서 벗어난 ‘근무기간이 안정적인 저임금 단순노동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학기 중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취업을 나감으로써 학습 결손을 가져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현장실습에 나간 학생들은 대부분 어리고 경험이 없는 까닭에 직장내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습을 빌미로 저임금에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많은 노동시간을 강요당하고, 잡다한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는 등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안전교육이나 산재보험 등 작업을 위한 어떠한 안전망도 없이 일터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하소연할 곳조차 제대로 없는 그야말로‘법의 사각지대,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버려진 셈이다.

광주에서는 배합사료 기계를 설치해 주는 회사에서 실습 중인 학생이 용접을 하다가 폭발사고로 2도 화상을 입고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300만원 정도의 치료비를 한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또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부 실업고에서는 학생 개인의 ‘생명보험 가입’을 의무화 또는 강권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직장내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소업체 사무직으로 실습을 나간 한 학생은 상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상사는 틈만 나면 몸을 만지고 뒤에서 끌어안았다고 한다. 회사를 나가서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노래방에 가서 춤을 추자고 강제로 끌어당기는가 하면,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자신의 차에 태워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에 완강히 저항했던 학생은 회사에 나가지 않았고, 담임교사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사가 항의하자 회사측은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철저히 잡아뗐다. 그러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자 회사측은 금전적 보상과 함께 공식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현장실습, 수많은 문제점에 노출
춘천의 모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춘천시내 양복점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고심 끝에 경찰에 고소하는 사건도 있었다. 밖으로 드러내놓지 못하고 고통받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성년인 고3학생의 현장실습은 그 제도 자체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기다.

최근에는 현장실습이 비정규직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삼성 등 대기업은 언제든지 해고를 용이하게 할 수 있고 근로자후생복지의 불필요, 저임금, 인력관리의 수월성 등으로 근로자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 사원을 가급적 적게 뽑고 인력파견업체를 통한 채용을 확장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계고 학생의 대기업체 취업을 원천 봉쇄해 실업계고교의 어려운 현실을 더욱더 어렵게 조장하고 있다.
사람을 확보하지 못한 사실상의 용역업체인 인력파견업체 학교 현장실습에 침투해 이러한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와 학생들을 유혹하고, 많은 학생들은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계고교의 현장실습이 필요하다면, 좀더 교육적 효과를 고려해 충실한 실습이 진행될 수 있도록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체에 충분한 사내 ‘교육과정’(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기업은 전무하다)이 필요하며, 학생들에게 ‘실습생의 의무’가 아니라 노동의 소중함과 함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교육해야 한다.

취업을 위해 현장실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해당 기업체의 자문과 지원을 받아 3학년 2학기는 학교에서 심화실습을 실시하고, 현장실습은 졸업 전 겨울방학 기간에 견학 위주로 실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만일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껍데기뿐인 ‘현장실습’제도 자체를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옳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기는 했어도 피교육자로서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성장해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까지는 국가와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감싸안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 대가로 행복함을 누릴 수 있도록 성장기의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배려와 투자가 절실하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일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한경리크루트 2003-07] 하인호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인천 선화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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