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한식 전도사, 김다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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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한식 전도사, 김다희입니다!
  • 허지은 기자
  • 승인 2016.11.23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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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희 한식 조리사

캄보디아,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다시 중국까지. 해외가 그리워 향수병이 났다는 그녀는 자신이 역마살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푸짐한 음식을 담으려면 그릇이 커야 하듯, 그녀의 통 큰 포부를 펼치려면 무대는 세계여야 할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매일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그녀의 한 마디, “일단 몸으로 직접 부딪쳐보세요! 반드시 뭐라도 얻게 될 겁니다.”

 

Q.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24살인 한식조리사 김다희입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2년간 한식조리사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최근까지는 한국 업체에서 메뉴개발자로 일했어요. 그러다 해외에서의 삶이 그리워져서 현재는 다시 중국으로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로를 위해 외식경영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Q. 해외에서 한식 조리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가 있었어요. 그 드라마에서 그려지던 한국은, 북한과 분단된 국가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는데, 한식은 잘 안 나오고요. 언론을 통해서는 외국에서 한식의 위상이 높다고 봤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눈으로 직접 해외에 나가 한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보고 싶고, 또 해외에 한식을 알리고 싶어서 한식 조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목표가 더 확고해졌어요. 그곳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캄보디아의 경제가 어렵다보니 간식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학교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 같은 개념의 작은 과자였죠.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받으면 한 명도 바로 먹지 않고 가방에 넣더라고요. 그래서 왜 안 먹는지 물어봤더니, 집에 가면 먹을 게 없으니까 가족들과 나눠먹으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겨우 일곱 살에서 여덟 살 아이들이 말이죠.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구 내지는 기관을 꼭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한식으로 배부르게 해 주고 싶다는 최종적인 꿈을 갖게 됐어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Q. 해외 취업을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대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외부 활동을 했는데, 학교에서 해외프로그램을 열 때 마다 지원해서 2년간 총 4번 해외에 다녀왔어요. 캄보디아도 그렇게 갔었고요. 요리와 관련된 대회도 참가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천시에서 주최한 ‘인천시 스토리텔링 맛 집 품평회’에 친구와 2인 1조로 참가한 것이었어요.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를 앞두고 인천으로 몰려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인천시에서 선정한 10개의 음식점 중 한 곳을 골라서, 그곳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소개하고 홍보 영상을 만드는 대회였죠. 저는 한식을 알리는 일
을 하고 싶었으니까,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알리는 내용의 영상을 찍기로 했습니다. 주변 인맥을 총 동원해서 일본인과 중국인을 섭외해서 음식을 먹은 후 맛이 어떤지 인터뷰를 했는데.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대상을 받게 됐습니다.
 외국어는 기본적인 것만 익혔어요. 다행히 영어는 해외 취업을 결심하기 전에도 일상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해외 취업을 대비해 공부한 건 전문적인 어휘나 표현 정도였습니다. 다른 언어는 전혀 공부를 안 했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홍콩에서 한식 조리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조리사는 기능직이다 보니 해외에도 일자리가 많아요. 그래서 취업 과정까지 일을 구하지 못해 어려운 건 없었죠.
 해외 취업을 위한 초기 비용은 졸업 전 한 달간 아르바이트로 번 돈 100만 원과 부모님께 빌린 20만 원을 합친 12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그 돈으로 비행기 표를 사고 여행자 보험을 들었죠. 그리고 남은 50만원을 가지고 홍콩에서의 첫 달을 보냈어요. 홍콩에서 일하는 동안 숙식이 제공돼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첫 달엔 생필품도 사야하고 주말엔 제 돈으로 끼니를 챙겨야 하니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어요. 싸구려 핫도그로 배를 채우기도 했고요. 그래도 홍콩생활이 재밌고 잘 맞아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웃음)

 Q. 해외 취업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느라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영어는 자신이 있지만, 중국어는 일상회화 수준, 광둥어는 초보적인 수준이에요. 그나마도 중국어(보통어)와 광둥어는 홍콩에서 일하며 현지에서 배웠어요. 영어를 쓰겠거니 했는데 막상 가니 광둥어를 쓰더라고요. 먼저 광둥어를 배우다가 중국어도 배웠어요.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언어에 대한 감을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현지 동료, 친구들과도 모르는 단어를 배우면서 친해질 수 있어요. 같이 밥 먹고 놀러 다니면서 자연스레 현지 언어를 배웠죠. 그러다 보면 말이 들리는 때가 와요. 현지에서 배우면 훨씬 습득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해외 취업이란 기본적으로 그곳에서 사는 것인데, 현지의 문화와 동화되지 못하면 견디기 어렵죠. 그런데 언어로 인해 이해되는 문화가 많거든요. 그래서 더욱 직접 가서 배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 준비한 뒤 나가려고 하지 말고 일단 부딪쳐보세요.

Q.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외국 동료들과의 관계가 힘들기도 했어요. 싱가포르에 1년 간 있을 때, 제가 일한 곳은 한국 식당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인 조리사의 월급이 다른 외국인에 비해 대우가 좋았죠. 그래서 처음엔 동료들이 자기보다 어리고 경력도 짧은 제가 자신들보다 더 좋은 급여를 받는 것에 대해 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해주려 노력했어요. 힘든 건 없는지 물어보며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려 애썼죠. 그리고 그들의 나라에 관심을 갖고 단어도 물어보고요. 진심으로 다가가니 통하게 됐어요.
결국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는 진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엔 서로 낯설고 어렵더라도, 기왕 외국으로 왔는데 한국인들과만 어울리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서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려 노력했고, 그래서 더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현지 음식에 거부반응이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식문화도 그 나라의 문화의 일부이니까 편견 없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막상 먹어 보면 다 맛있더라고요.

Q.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 주세요.
 정확한 목표가 없다면 해외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들 겁니다. 하지만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죠. 또, 자신이 해외 생활과 맞지 않으면 힘들어요. 제 경험상 외국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있는 분이 좀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기회는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지르고 후회할 것 같으면 그 다음 방향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면 되니까, 해외 취업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고 직접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준비를 할 필요도 없어요. 이것저것 많이 준비하다 보면 더 겁을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우선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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