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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는 바라보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루라고 있는 거죠!”제이쓴 인테리어 디자이너·교수
허지은 기자  |  jeh@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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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승인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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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계의 아이돌, ‘제이쓴’을 만나다!

1위 파워블로거이자 인테리어 서적 2권을 낸 작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교수인 그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자신이 바뀐 것은 나이밖에 없다’고 말한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실명 대신 닉네임을 사용하고, 절대 선글라스 너머의 얼굴을 대중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어 묘하게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제이쓴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공부와는 연이 없었던 그는 25살 때 늦깎이 재수를 시작해 대학에 진학한다. 겨우 4시간을 자고 공부하며 갔던 대학이지만, 그는 적성과 맞지 않는 전공 공부에 매달리는 대신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취방을 돈 많이 안 들이고 좀 꾸며보고자 셀프 인테리어를 해 블로그에 과정을 올려봤다.
 우연히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가 재밌어서 오지랖도 부렸다. 제이쓴에게 있어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주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야학 봉사활동을 한다든가 석고 방향제, 팔찌를 만들어 지인에게 나눠주는 것은 남의 자취방을 재료비만 받고 꾸며줬던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렇게 시작된 ‘오지랖 프로젝트’를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어 출판사에서는 ‘콘텐츠가 재미있다’며 출판 의뢰를 보내왔고, 아마추어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 발간한 <제이쓴의 5만 원 자취방 인테리어>, <제이쓴, 내 방을 부탁해>는 꽤 인기를 끌었다. 이때 마침 셀프 인테리어 열풍이 불면서 동시에 TV출연도 하게 됐다. 한 대학에서는 그를 인테리어 학과 겸임 교수로 초빙했다. 광고, 캠페인 촬영, 강연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제치고 한 디자인재단에서 중책을 맡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불과 4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꿈을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아끼고 싶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이룬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하고 싶은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버킷리스트를 채우는 과정이죠. 일이라고 하면 노동과 재화를 교환하는 행위잖아요. 그래서 절대 즐거울 수 없죠. 제게는 이 모든 활동이 취미생활입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블로그는 2017년 3월 기준, 누적 방문객 수가 1천 1백9십만여 명에 이른다.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그런 거 하다가 취업 못 한다’는 만류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한번 마음먹은 일을 쉽게 접을 그도 아니었다.
 “취업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취업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저도 이력서 넣고 탈락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펙이라는 걸 쌓아본 적이 없었죠. 그런데 나중에 제 이력서를 다시 보니까 저는 제 자신을 그들의 규격에 맞추고 싶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참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고요.”
 그는 자유분방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다면 비행기 표만 구해 훌쩍 떠나기도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
 “행복해지는 것이 제 꿈인데, 꿈을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당장 내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내일 당장 비행기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신념대로 매일매일 저는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
   
'우유니'에서의 제이쓴
   
'우유니'에서의 제이쓴 2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시작한 것은 확실히
 그를 보면 어른과 아이가 반반 섞인 듯한 느낌이 든다. 블로그에 올라온 그의 글만 봐도 느껴지는 천진한 말투는 그가 출연한 ‘헌집 줄게 새집 다오(JTBC)’의 PD로부터 ‘14세 여고생이 쓴 것 같은 필력’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시작하는 모습도 그렇다. 하지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하던 일까지 팽개치지는 않는다. 맡은 건 끝까지 책임지는 어른다운 모습이다.
 “저는 프리랜서인데 만약 제가 열흘간 여행을 간다고 하면 누가 그동안 제 일을 해주나요. 여행 계획을 잡는다고 하면 이미 그 전에 일을 처리해놓고, 혹여 수시로 관계자와 의논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은 여행지에서라도 꼭 하죠. 어쩌면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JTBC의 ‘헌집 줄게 새집 다오’출연도 하고 싶은 것을 따르되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할 각오를 충분히 한 후 결정한 일이다. 사실 지금껏 출연한 프로그램 외에도 그에게 섭외 연락이 왔던 프로그램들이 더 있었지만 그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 제안은 거절했다. 하고 싶은 것을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충분히 신중함을 기하는 것이다.
 “방송에 나간 것은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그랬다면 진작 실명을 사용하고 선글라스도 벗었을 겁니다. MBC ‘나 혼자 산다’와 다큐멘터리 ‘집, 어디까지 고쳐봤니’출연은 모두 이미 진행하고 있던 ‘오지랖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헌집새집’은 평소 일반 가정집에는 시도 할 수 없는 인테리어를 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이 가능한 기회였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한 거예요.”
 하고 싶어서 했어도 그로 인한 수고는 온전히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새벽까지 촬영을 마치고 와 또 다시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하고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다녔다. 도면도 그릴 줄 몰랐던 그가 프로그램을 위해 도면 제작 방법까지 배웠다. 또한 ‘헌집 새집’을 찍으며 대학 교수 제안도 받게 됐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돼 있었어요.”
   
제이쓴의 손이 닿기 전 의뢰인의 방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교수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생각도 못 한 놈이 교수를 하고 있다니’. 위로 누나가 있는데 저는 어릴 적부터 말썽쟁이였고 어머니는 누나가 교수가 되기를 바라셨죠. 어머니가 저를 보며 ‘쟤는 뭘 먹고 살까’하고 걱정도 많으셨는데 그랬던 제가 교수가 됐다니 우셨다고 하더군요. 이렇게보면 인생 참 재밌지 않나요? 저도 ‘내 인생이 과연 어디까지 갈까?’ 이런 기대가 돼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돼 있었고, 교수가 돼 있었고, 작가가 돼 있었어요.”
   
제이쓴의 인테리어로 위의 공간이 새롭게 재탄생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그가 했던 여러 셀프 인테리어의 과정과 결과물이 올라와 있다. 그 글을 유심히 지켜봤다면 아마도 그의 디자인이 발전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뛰어든 거예요. 이론 교육을 따로 받은 적도 없죠. 정말 하고 싶어서 몸으로 하나하나 겪으면서 배웠습니다. 그런 것을 학습이 아닌 ‘체화’라고들 하죠.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써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방팔방 찾아다니며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어요. 제 방에 인테리어를 할 때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울 때도 많았고요. 처음에는 샘플도 찾아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업체에서 먼저 샘플을 보내주셔서 이럴 때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하고 느낍니다. 만약 ‘싱글라이프’라고 해서 제 집만 고치고 끝났다면 지금의 제이쓴은 없었을 거예요. ‘난 재밌는데, 더 하고 싶은데’ 이 생각으로 4년 가까이 제 인생을, 블로그를 끌고 왔으니 끝까지 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건 맞는 말 같습니다.”

인생은 모두 ‘절대적 가치’, 비교의 대상 아니야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도 ‘부러움’ 내지는 ‘신기함’일 것이다. ‘나도 저렇게 끌리는 일을 신나게 하면서 살아볼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텐데 어떻게 다 이겨낼 수 있었을까’하는 마음.
 “당연히 저는 다른 사람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특별하다거나 뭔가 독특한 일을 해서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은 다 각자 다릅니다. 이 나이가 됐으니 취업을 해야 하고, 저 나이가 됐으니 결혼해야 하고…. 이런 건 말이 안 돼요. 한 사람의 인생은 그 고유의 가치와 방향이 있는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은 그가 자신의 인생에 지울 의무를 재정립하게 했다. 인생의 목표는 오직 ‘행복’이었다. 그리고 취업, 물질적 성공, 결혼 등의 일반적인 목표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자연스레 그의 인생에서 어떠한 압박의 요소도 되지 못했다. 대신에 행복을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것이 버킷리스트가 됐다.
 “버킷리스트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명성, 누군가 나를 찾아왔을 때 맛있는 디저트를 사거나 부모님께 한 번씩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정도의 물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모두 따라 왔어요. 추구한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생긴 것인데, 제가 떳떳하게 살아온 결과로 누군가에게 대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행복’에 대한 것이다.
 “저는 부지런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게 많으니 바쁘게 움직여야 했죠. 한 번은 제 블로그에 누가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게 자극 좀 주세요!’ 하는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버킷리스트는 바라보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루라고 있는 거예요!’ 제 삶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들이 저는 더 신기합니다. 신기하게 보시지만 말고 ‘그냥 이렇게 살면’되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꿈을 접는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요.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꿈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좋아하는 일을 하나하나 발전시키며 해 보세요.”

글┃허지은 기자
jeh@hkrecruit.co.kr
사진 : 신세계 코모도 스퀘어 제공, 제이쓴 블로그(blog.naver.com/yeon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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