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시대 新직업, 디지털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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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시대 新직업, 디지털 장의사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7.07.28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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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

재작년까지 노량진에서 민법을 가르쳤던 박용선 씨는 지난 25년간의 학원 강의를 정리하고‘디지털 장의사’라는 새로운 직종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장의사’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 흔적들을 정리하는 사람 또는 회사를 말한다. 요즘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지털 장의사가 화제다. 조금은 신기하면서도 낯선 직업, 디지털 장의사에 도전한 박용선 씨를 만나본다.

Q. 디지털 장의사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 흔적을 청소해주는 미국 온라인 상조회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경우보다 살아있는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지워달라는 요청을 주로 많이 합니다.
 제게 찾아오시는 분들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경우 성형 전 얼굴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많고, 기업은 자신들 회사 사이트에 올라온 진상 고객 글을 삭제해달라는 의뢰를 주로 합니다. 또는 사업을 다른 분야로 바꿨으니 예전 사업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넷상에 남은 자신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는 그걸 삭제하는 일을 합니다.

Q. 삭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우선 삭제할 때는 사유를 소명해야 합니다. 소명이란, 삭제요청 사유를 적는 것인데 이를 굉장히 자세하게 적어야 합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이요.
 며칠 전 맡았던 사건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를 찾아온 의뢰인이 촛불시위에 대한 자신의 소신발언을 한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하루아침에 여기저기 퍼지면서 논란이 되었고, 의뢰인의 신상정보도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의뢰인이 올린 글의 포털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포털사이트 측에서는 왜 삭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묻습니다. 이번 의뢰건의 경우, ‘누구라도 정당하게 비판할 자유(소신발언)가 있는 것인데, 그 자유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삭제를 해달라’고 소명하였습니다. 설명은 이렇게 드렸지만 보통 소명을 낼 때는 포털사이트 쪽에서도 납득할 만큼의 내용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게시한 포털사이트에 직접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는 1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2차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심의 중재를 거칩니다. 여기서도 해당 사이트가 삭제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호사를 선임해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Q. 완전 삭제도 가능한가요?
 100% 삭제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A라는 사이트에 올라간 글을 포털사이트 측에서 삭제했더라도 구글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는 검색기록이 남습니다. 본래 서버에 있는 글을 삭제해도 다른 포털사이트에 여전히 검색결과가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포털사이트마다 따로 접촉해 그 검색 결과를 내려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국내 포털사이트 점유율은 네이버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다음과 네이트입니다. 우선 이 세 곳에서 삭제하고자 한 글이 삭제되면, 다른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결과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Q. 많은 의뢰가 들어올 텐데, 혹시 들어온 의뢰 중에 맡지 않은 의뢰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변호사와 비슷합니다. 우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요청은 진행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사실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기사를 퍼가서 다른 곳에 올렸다면, 그 게시글은 삭제가 가능합니다. 이 외에 특별한 이유 없이 사이가 멀어진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삭제하고 싶다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의뢰자의 사진을 개인정보로 간주하고 ‘개인정보 유출’을 사유로 사진을 삭제시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한 소명 절차인 것이죠.

Q. 요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몰래카메라입니다. 이와 관련한 사건도 있었는지요?
 네. 있습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의 경우 이미 찍힌 것을 저희가 찾아내어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찍힌 영상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어야 그때부터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깁니다. 삭제 또한 웹사이트 상에 유출된 것들만 삭제가 가능할 뿐, 개인PC나 카카오톡 등의 개인서버 및 폐쇄형 SNS에 올라간 기록은 저희도 삭제할 수 없죠.

Q. 향후 디지털 장의사란 직업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대인들은 눈을 뜨고 나서 잠들 때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핸드폰 안에는 좋은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악의적인 내용도 많습니다. 비판 글이 아닌 비난 글 같은 것들이요. 비난 글이 있을수록 디지털 장의사가 할 일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무조건 글을 삭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난 글을 좋은 글로 바꿔줄 수 있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서버에 올라온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지만, 혹은 글을 직접 작성한 분을 저희가 만나서 오해를 풀고 문제가 된 글을 수정하도록 조치할 때도 있거든요.

Q. 디지털 장의사가 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디지털 장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과나 공인 자격증은 아직 없습니다. 디지털 장의사 자격증이 있기는 하지만 민간 자격증이죠. 하지만 인터넷정보관리사 자격증과 같이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면 일을 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개인정보호법 등 관련 법률도 알아둔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덧붙여 무엇보다 디지털 장의사가 되려는 분들이라면 SNS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젊은 분들이 인터넷과 디지털에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데 있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 외에도 기록물 삭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신중을 더할 수 있는 분들이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에 조금 더 적합할 거 같습니다.

글┃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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