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LAB의 간판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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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LAB의 간판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 허지은 기자
  • 승인 2017.12.2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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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박기태LAB 대표
평창 동계 올림픽 준비로 나라가 들썩들썩하다. 지난 11월 1일부터 101일간의 국내 성화 봉송도 시작됐다. 스포츠 선수뿐만 아니라 ‘기술 선수’에게도 올림픽이 있다. 바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다. 우리나라는 73년 대회부터 23년간 Top2를 벗어난 적이 없다. 1위 기록만 19회에 달한다. 모두 뛰어난 실력의 기술인재들 덕이다. 아트퍼니쳐 공방 ‘박기태 LAB’의 박기태 대표도 2001년 기능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스타기술인 홍보대사’,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된 그는 현재 후배를 양성하는 한편 목공 기술인이 나아갈 길을 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서울 봉천동에 자리한 ‘박기태LAB’을 찾았다.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었지만 맑은 날씨 덕분인지 내부는 환했다. 목재를 다루는 공방답게 실내는 밝은 원목으로 가득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가장 먼저 한쪽 벽에 자랑스레 걸려 있는 각종 상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못 받은 상은 국무총리상 밖에 없는 것 같아요(하하). 
돈복은 별로 없는데, 희한하게 상복이 많은 편이예요. ‘우수숙련기술자’ 모집 당시에도 마침 시간여유가 있어서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 신청했었죠.”

 박 대표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는 목공분야에서 꽤 
이름 있는 실력자다. 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교육하는 기능올림픽기술위원 활동이 그 증거. 재능기부의 개념으로 초보 목공인들을 위한 강연도 종종 연다. 후배 목공인을 양성하기 위해 강의도 나간다. 한국폴리텍1대학에 출강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모교인 중앙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출강하고 있다.

 “방학 때는 학생들을 초대해 여기서 실습수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1학년들은 아무래도 선배들과 함께 사용하는 학교실습실을 쓰기 어려운 때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작업을 했죠.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손해지만, 제자들이니까 당연히 내어주었습니다.”

 그 때 다녀간 학생들이 남긴 방명록은 상장보다 더 입구 가
까이에 걸려 있었다. 방명록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 박기태LAB은 목재를 사용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나무를 재료로 한 것은 거의 다 만들 수 있다. 원래 이름은 ‘히드니쳐(Hiddeniture)’였는데,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상호로 바꿨다.

 “정직하게 사업을 꾸려가려는 마음으로 이름을 걸었는데, 
좀 쑥스럽기도 해요. 뒤에 ‘LAB’을 붙인 건 돈을 쫓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담기 위해서예요. 사업을 시작할 때 아예 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도 비우고 시작했습니다. 버티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개수는 적어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이제 창업을 한지 3년이 됐는데, 그동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연구하는 데 더 중점을 두기도 했고요. 아직 청년이잖아요.”

 화학처리 없이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 나무도마는 아마 그
런 연구과정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확장이 가능한 식탁, 의자 세트나 편백나무 소파도 흔하지 않은 시도다.


 Design “Your” Life
 그러나 공방에는 판매를 위한 제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박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와 카페에서 그나마 10개 남짓의 제품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의 눈에도 박기태LAB 제품의 곡선 모서리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얼마나 세심한 감각이 요구되는지 절로 느껴질 정도. 하지만 개수가 너무 적어 도대체 어떻게 사업을 꾸려가는지 궁금해졌다.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기보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사업
을 하고 있어요. 저희 공방에서 만든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는 건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가구를 외부에 오픈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일종의 철학입니다. 가구는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집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신에 가족에게 만들어준 것은 양해를 구하고 올리기도 합니다. 상담할 때만 조금씩 보여드리고요.”

 가구를 사용자의 삶과 동일하게 여기는 박 대표는 작품을 
만들기 전 고객과의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디자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상담할 때 그 집의 이미지부터 먼저 받아 봐요. 가까우면 직접 가서 보기도 하죠. 그래야 정확히 고객이 원하는 부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려면 도면을 그리는 것부터 부품 수급, 제작까지 전부 매번 다시 해야 하기에 가격이 저렴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내구성은 정말 자신 있어요. 기성
품은 오래 쓰면 틈이 벌어지고 망가지기 쉽지만, 저희가 만든 제품은 자녀에게 물려줄 때까지도 튼튼합니다. 또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해 제작하니까 쓰기에도 더 좋으시고요.”

 후배들 위해 끝까지 이 길 걷고파
 박기태LAB의 간판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 간판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일부러 전기를 연결하지 않았다. 그가 불을 밝히고 싶은 건 ‘박기태’라는 이름 석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기 전에는 전시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전시설계와 시공을 담당했었어요. 목공 일과는 조금 다른 분야였지만, 남들이 퇴근하고 회사에 홀로 남아 이전의 프로젝트나 관련 논문을 찾아 공부하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망할 줄 알면서도 창업을 한 이유는 후배들에게 나무 깎으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편하게 살려면 직장생활을 계속했으면 됐지만, 제가 그 길을 가지 않으면서 목공기술로 인생을 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언해 줄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가 목공기술을 배웠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어린 
나이에 기술을 배운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직 30대인 그가 후배들을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아직 30대인데도 목공 일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인생의 3분의 2가 지났습니다. 앞으로 40~50년도 목공 일을 할 것이고요. 이 길을 묵묵하게 가면서 목공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제 욕심입니다. 성공의 기준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지금도 성공했죠. 혹여 제가 망하거나 무너져 실패를 하더라도 그 실패는 이 분야의 실패가 아닌 저의 실패로 끝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제가 부족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못했던 부분을 지금 해두라고 조언할 것이고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 길을 계속 가야 후배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목공 기술에서 비전을 찾다
 인터뷰를 하기 전 상상한 공방은 톱밥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조금은 뿌연 곳이었지만 박기태LAB은 의외로 깔끔했다. 공방보다 카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물티슈를 들고 틈틈이 테이블을 닦는 박 대표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먼지를 뒤집어쓰는 목공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공업고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우게 됐는데, 문득 동기들이
랑 같은 기술을 배워 사회에 나가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특기분야 중에 목공이 있었는데, 이 일을 배우면 빨리 취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게다가 목공 기술을 배우면 장학금까지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목공 기술을 배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목공 분야는 
일자리가 많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성취감도 크고, 기술만 갖추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목공기술을 가지면 취업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집니다. 기술을 제대로 익힐수록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수도 있죠. 젓가락질을 잘 하면 편식을 잘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웃음). 다른 재료에 비해 나무는 깎을 때의 손맛도 좋고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의 뿌듯함과 성취감도 큽니다. 일자리도 많아요. 20대에 목공 기술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거든요. 주변에 가구공방을 운영하는 분들도 기술자가 없어서 힘들어
하세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다 공방장이라 기술적인 부분보다 공방 경영에 더 힘을 쏟으셔야 하니 함께 일할 젊은 기술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공방에도 자리가 있고요. 이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떤 기술이든 배워두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이야기를 한참 들으며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됐다. 그의 말에는 ‘정말’, ‘매우’, ‘너무’가 없다. 무늬를 새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결 그 자체가 아름다운 나무가 떠오른다. 주어진 삶을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나무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설거지 아르바이트였다 해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고등학교 때 피자가게에서 하루 3시간씩 설거지 아르바이
트를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도우를 만들거나 토핑을 올리는 나름의 전문 분야가 있었는데, 겨우 3시간 일하는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건 누가 와도 할 수 있는 설거지였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설거지로 저만의 포지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했습니다. 1분에 컵 47개를 씻을 수 있을 정도로 잘 하게 됐고요. 덕분에 학교에서 야간작업을 해야 하는 날에 양해를 구하고 빠져도 이해를 해 주셨어요.”

 그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없다. 어떤 일이라도 나중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살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 여러분들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별 거 아닌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제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듯 말이죠. 지금 하는 일이 나중에 하게 될 일과 다 연결이 됩니다.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낙담하지 마시고, 모두 힘내세요!”
 
글 | 허지은 기자 jeh@hkrecruit.co.kr
 
<사진제공 : 한국산업인력공단 / 이성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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