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주의’ 마을에서 이장을 꿈꾸는 30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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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주의’ 마을에서 이장을 꿈꾸는 30살 청년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4.25 12: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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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한 행복바구니 책방지기

지난해 12월 강동구 성내동 강풀만화거리에 12평(39.7m²) 남짓한 책방이 문을 열었다. 이곳의 책방지기는 올해 30살이된 이세한 씨. 그는 대학에서 실내건축학과를 전공하고 2년간 스타트업을 다녔다. 그런데 잘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책방 ‘행복바구니’를 오픈했다. 한 때 40억 원 대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그 욕망을 쫓던 중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하고 싶었던 책방을 오픈하면서 느꼈단다.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착한 자본주의가 있는 마을을 만들고 그곳의 이장이 되고 싶다는 그가 궁금해졌다. 행복을 담은 서점, ‘행복바구니’에서 그를 만났다.

▲행복바구니 책방지기 이세한 씨[사진=오세은 기자]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정한 잘못된 미래 설정
이세한 씨는 고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8년간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에 열심이던 어느 날 겨루기를 하던 중 상대방의 발차기에 명치를 맞고 쓰러졌다.

“태권도를 오래 해왔던 터라 자연스레 태권도 선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겨루기 시합 도중 상대방 발차기에 명치를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습니다. 너무 아파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 때 그만 두었습니다.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았죠. 이후 태권도를 하면서 소홀히 했던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생각보다 성적이 나쁘지 않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했더니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그는 경희대학교 실내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자신의 적성보다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처럼 성적에 맞게 진학한 것.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군에 입대했고 제대를 앞두고는 진로를 고민했다.

“전공에 뜻이 있어 진학한 건 아니었어요(웃음). 당시 ‘인서울’을 희망했기 때문에 성적에 맞춰 간 거였죠. 그리고 얼마 후 군에 입대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군 생활에 열중했죠. 그런데 전역이 다가오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되더라고요. 보통 군대 가면 전역을 앞두고 다들 이런 고민을 하거든요. 진로를 고민하던 중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전공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있으니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 중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감정평가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거였거든요. 꿈은 이렇게 정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하하).”

전역 후 감정평가사가 되기 위해 서둘러 고시촌을 알아보기 시작한 이세한 씨. 그러나 막상 고시촌을 돌아다니면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당시 23살이었는데 제 젊음을 고시촌에서 보낸다는 게 슬프고 무서웠어요.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률은 그리 높지않아요. 8년간 공부한 사람들도 있죠. 도전을 한다면 3년 이내에 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엔 고시촌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저 스스로 감정평가사를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에서 4개월간 일 했습니다.”

20대 초반, 매매가 40억 원 아파트를 꿈꾸다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던 중 그는 서울 성동구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한 고급 아파트 ‘갤러리아 포레’를 보는 순간 욕망이 불타올랐고, 언젠가 그곳에 입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오세은 기자]

“서울숲 인근을 지나가는데 그곳에서 높은 건물의 웅장한 아파트를 봤어요. ‘갤러리아포레’였죠. 보는 순간 ‘나도 저기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올랐죠(하하).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매매가가 약 40억 원이더라고요. 머릿속으로 감정평가사가 된다면 여기에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결론은 쉬지 않고 40년 동안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60살이고요. 그때 한편으로는 저기에 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갤러리아 포레에 대한 욕망은 살아 있었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돈을 잘 버는 방법을 개인 사업, 창업이라고 생각해 창업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조금씩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지름길은 창업이라고 생각했죠. 창업을 위해서 일단 대학에 다니면서 1천만 원을 모으겠다고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천만 원을 모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급이 높은 교육 관련한 회사에서 일했어요. 단순히 급여가 높아서 선택했죠. 그곳에서 5살 정도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스케줄이 당시 대학 4학년이었던 저보다 더 바쁘더라고요. 논문과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저보다도 더 바빴어요. 간식 먹는 시간까지 정해져있다는 것에 놀랐고,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 않았죠. 저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본연의 임무를 조금 미루고, 그보다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 주력했어요. 아이들을 좀 더 웃게 해주고 싶더라고요.”

그는 학교와 병행한 회사 일이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때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귀가했는데 기분이 왠지 모르게 좋더라고요. 내일이 기다려지는 감정을 처음 느껴봤어요. 그리고 ‘오늘 참 알차게 보냈다’라는 감정도 처음이었요.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웃게 해주는 일이 제게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었죠. 그때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명확히 받았어요. 당시에는 그 감정이 행복인줄 몰랐고, 단순히 만족스러운 감정으로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그것이 행복이었습니다(웃음).”

고가의 아파트에 살겠다는 세속의 욕망을 쫓던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쫓는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았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면서 졸업이 다가왔다.

“교육 회사에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지혜를 많이 배웠어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이 다가왔어요. 주변친구들처럼 상·하반기 공채 때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곳은 없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돈을 벌려면 창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그렇게 스타트업을 다니면 서 창업에 대해 일부분이나마 배우게 됐어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이템 선정이었습니다. 또 하나 배운 점은 IT 기반인 스타트업은 급격하게 변하는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기술을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적극 대응해야겠지만 향후 20~30년 후에도 스타트업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 결론은 불가능이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20~30년 후에도, 아니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건 ‘행복’이란 가치였어요. 세상이 발전하고 빠르게 변화될수록 행복은 더 가치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의 명함 뒤에는 ‘나에게 행복이란?’ 글귀가 있다. 그에게 행복을 물었다. 그는 “충만한 하루다 하루를 마무리 지을 때 뿌듯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날짜를 적는 공간에 대해 물었더니 행복이란 감정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사진= 오세은 기자]

‘책방’이란 공간을 통해 행복 나누고파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개인마다 다르고 행복하지 않은 요소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는 행복하지 않은 여러요소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많습니다. 주변의 청소년들을 보면 잘 아실 것입니다. 주입식 교육, 경쟁시스템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행복하지 않고 건강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사회적인 지표에 나타난 것만 봐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는 전 세계 156개국 상대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를 담은 ‘2018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됐으며, 1위는 북유럽 핀란드가 차지했다.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자신이 느낀 행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했고, 고민 끝에 책방을 열기로 했다.

“제가 알고 있는 행복이란 감정을 남들과 공유하고 전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방을 열게 됐죠. 책방이란 공간을 통해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인터넷과 휴대폰이 발전하면서 인쇄산업은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잘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 두고 책방을 열었다. 부모님께서도 많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동안 저축한 자금을 책방에 투자했다.

“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네요(하하). 문을 열면 많이 찾아와 주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읽고 관심이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경제적으로 힘은 들지만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 잘 버티고 있습니다(웃음). 요즘은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해 자유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특히, ‘행복’이란 키워드로요.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 ‘이세한’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훗날에는 행복 전문가로서 포지셔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간혹 ‘행복이 밥 먹여 주냐’라는 말도 종종 듣지만, 훗날 행복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행복바구니는 매주 특정한 요일과 시간대에 작은 모임을 갖는다. 주로 독서모임과 직장인들의 취미활동 공간으로 활용된다.

“인생에 있어 크든 작든 영향을 주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서모임을 만들게 됐죠. 독서모임을 통해 책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문장을 찾아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문장이 왜 좋은지 질문도 하고요. 질문하다보면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알게 되요.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내면 한 주 동안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죠.”

그는 저자 강창균, 유영만의「버킷리스트」를 읽고 2015년부터 버킷리스트를 써오고 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면서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2015년부터 기록한 버킷리스트 노트


“버킷리스트에 적힌 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사실 버킷리스트에 적힌 것들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어요. 실천해보기 전까지 모르죠. 버킷리스트에 적힌 것들을 실행하면서 얻은 것은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판단의 근거는 경험에서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40억 원의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 중 하나로 감정평가사를 생각했어요. ‘갤러리아 포레’ 입주라는 상상, 현실 가능한 상상을 하면 그것을 이루려는 행동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를 실천하면서 삶에 있어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있으면 좋죠. 그런데 저는 이보다 더 필요하고 좋은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무 100그루 심기, 수목장(樹木葬) 문화 만들기 등등입니다. 먼 미래에는 착한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마을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이장이 되는 게 꿈이에요(하하).”

글·사진 | 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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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2018-05-07 12:24:25
"한국에서의 30살"
이라는 검색어를 검색하다가 찾아 들어와 이 기사를 읽게 되었네요.
곧 30살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대체 한국에서의 30살은 어떤의미일까
무슨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하는것인가 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요즘 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행복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책방지기님의 삶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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