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20초짜리 티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상태바
“인생에도 20초짜리 티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6.25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대표
▲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사진=오세은 기자]

서울대 미대 입학, 삼성 제일모직 수석입사.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의 이력이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국내 대기업 패션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 10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치료를 위해 심리상담 전문가 4명에게 상담받았지만 치료가 어려워 결국 자문자답이라는 치료 방법을 권유받았다. 그는 치료목적으로 2개의 아이디를 개설해 블로그에 문답형식으로 자신의 고민을 써내려갔다. 그런데 블로그는 상담소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게 ‘좀 놀아본 언니들의 시초’다.


‘이제는 꽃길만 걷겠지’란 기대
장재열 대표는 단순히 회사 조직 내 상하관계에 부적응해 우울증이 걸린 게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오랫동안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키도 작았고 마음도 여렸던 그에게 사회는 희망이 가득하기보다는 조금씩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

“꽤 오랜시간 왕따를 당했어요. 여러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에게 SOS를 쳤지만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죠. 반장선거가 있는 날 자진 출마를 위해 손을 들었어요. 반장이 되면 친구들이랑 조금은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주공아파트 사는 애는 출마 안 된다’며 손을 내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어른들 그리고 사회는 ‘그리 좋은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죠. 이런 이유로 자연스레 생존 본능이 강해졌고요.”

그는 삼수 끝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재수시절 부모님의 응원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서울대를 고집한 이유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이 신촌 거리에서 모대학교이 점퍼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타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신촌에서 저를 따돌린 친구가 모 대학교의 학과 점퍼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다시 서울대를 목표로 했죠. 그 친구보다 더 유명한 대학에 가야겠다 싶었죠. 쉽지 않았지만 결국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입학과 동시에는 취업준비를 했어요. 아마도 ‘그들보다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1학년 때부터 많은 대외활동을 했고, 졸업 무렵에는 이력서,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들이 넘쳐났죠.”


그는 졸업 후 자신의 적성과 맞아떨어지는 패션회사에 수석으로 입사했다. 대학생활 동안 쌓은 이른바 ‘스펙’이 출중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입사 10개월 만에 그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아픔이‘그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라는 욕망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어요. 내면의 욕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목적 없이 허상을 쫓았던 거죠. 대학 선택도 그랬고, 회사도 그러했고요. 회사에 들어가 저는 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나는 상하 조직 문화를 전혀 못 버티는 성격’이라는 걸. 내적 한계를 알게 된 거죠. 입사 후 인사팀으로 배정받고 면접관으로 참여해 면접을 보다 지원자들 앞에서 코피를 흘렸어요. 신체 이상 징후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죠.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삶, ‘좋은 대학에 가고, 연봉이 높은 대기업에 입사’하면 ‘꽃길만 걷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인생에 완결점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고민 해결의 씨앗은 자신에게 있다’

▲ 장재열 대표가 지금까지 ‘좀 놀아본 언니들’을 통해 상담해준 이는 3만여 명에 달한다. 그는 “상담소를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은 사회적인 단상으로 보면 슬픈 현실”이라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그는 퇴사 후 심리상담 전문가에게 자문자답을 권유받고 블로그에 문답형식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내 자신을 치료하기 위한 글이었는데 의외로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이 결국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의 시초가 됐다.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은 20~30대 사회인 12명이 20대 청춘들의 고민을 무료로 상담해 주는 곳이다. 연애, 취업, 진로, 성정체성, 가정환경 등 다양한 고민을 조금 더 살아본 20~30대‘언니오빠’들이 수다 떨듯이 고민 상담을 해준다. 상담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12명 모두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다. 장재열 대표도 최근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그는 여러 방송에 출연해 활동했고 지금까지 3권의 책을 펴낸 작가다. 

그가 지금까지 좀 놀아본 언니들을 통해 상담해준 이는 3만 여명에 달한다. 그는‘좀 놀아본 언니들’을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은 사회적인 단상으로 보면 슬픈 현실이라고 말한다.

“많은 청년들이 우리를 찾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해요. 대개 청년들이 가진 고민은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상담해온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취업과 진로에 관련한 것이었어요. 대부분 개인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죠. 올해 초 ‘좀 놀아본 언니들’은 청년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10~30대 청년 21,942명 대상으로‘청년마음’통계를 낸 바 있습니다. 그 조사에서도 취업·진로(56%)가 1순위로 나타났어요. 그만큼 청년들이 진로와 취업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그 외에 연애(43.9%), 퇴사(20.7%), 대인관계(16.2%), 공무원(10.9%), 결혼(5.8%) 등으로 나타났고요.”

청춘상담소‘좀 놀아본 언니들’의 역할은 단순히 고민 사연을 들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담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고민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솔루션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좀 놀아본 언니들’의 역할이다.

‘좀 놀아본 언니들’은 올해로 활동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장재열 대표는 여러 사람의 고민을 듣는 일로 인해 마음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상담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바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상담 일이 감정소모가 많고, 비영리단체이다보니 꾸준히 상담소를 이어나갈 동력이 필요해요. 짧은 주기로요. 많은 분들이 사연을 남기시는데 어떤 분은 자판기에서음료를 뽑듯 저희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세요. 이럴땐 참 허탈하죠. 그리고 온라인에서 상담을 진행하다보니 제가 상담해주는 상대방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런데 최근 모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마시던 중 일하시는 분이 음식을 서비스라며 내어주시더라고요. 이전에 저희 상담소 내담자라고 하시면서요. 이처럼 온라인 상에서 상담했던 분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상담소를 지속할 힘이 강해졌어요.”

그는 내담자들에게 상담만을 해주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고민을 내담자들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의미를 발견한다고.

“제 고민을 저희 멤버들에게 털어놓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큰 관심을 가져주고 결속력도 강해집니다(웃음). 그런데 내담자들에게도 제 고민을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토닥여 주세요. 제 고민을 듣고는 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위로 받은 책 한 구절을 알려주세요. 이를 통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거울효과인 거죠. 그게 포인트죠. ‘좀 놀아본 언니들’의 슬로건은‘누구나 다 상담가가 될 수 있다’, ‘고민 해결의 씨앗은 자신에게 있다’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문제점은 잘 보는데 스스로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거울에 비춰보면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인데요.”
 

인생에도 미리보기가 있었으면…

거의 매일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그의 고민은 무엇일까. 올해 30대 중반으로 접어든다는 그의 현재 고민이 궁금해졌다. 

“상담소를 통해 온라인에서 유명해지자 갑자기 방송, 라디오, 출판사 등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우울증은 나았지만 재활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가 온 거죠. 그래서 재활기간을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방송 활동 등을 쉬면서 재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방송일은 쉬지만 상담은 하루 스케줄에서 빼놓지 않는 일과이다. 스스로 백수라고 칭하고 있지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등등 기성세대가 바라는 이상향을 쫓았어요. 그 이상향을 거머쥐면 꽃길만 걷게 되고 더 이상 고민이 없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남들이 봤을 때 부러운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진짜 ‘장재열’이 추구하는 가치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데 방송활동을 하면서 다시 ‘유명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겉모습만 좋아 보이는 것들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음에도요. 최근 이러한 허상을 쫓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2차 우울증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이전에는 우울증에서 그쳤지만 현재 욕심내고 있는 영역을 섭렵하고 나면 그때는 우울증보다 더 좋지않은결과가올것같은느낌이들어요. 그래서 현재는 방송 일을 하지 않고 있어요. 백수죠(하하).”

그는 겉만 화려한 인생, 황금이 가득한 박스를 완성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황금으로 가득할 줄알았던 박스는 황금이 하나도 없는 텅 빈 박스였다.

“저는 ‘좋은 학벌로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겠어’라는 식으로 생존해왔어요. 그런데 이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었죠. 그래서 지금은 장재열이 원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가치관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여전히 모르겠네요(하하). 30대 전반은 청춘상담소의 상담가로서 살아왔다면 30대 후반전에는 우리 사회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5년 전 장재열이 상담가가 되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그래서 5년 뒤 39살의 장재열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가 너무 궁금해요. 이 궁금함에는 불안감, 기대감, 호기심 등등 너무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섞여있어요. 인생에도 20초짜리 티저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 올해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그의 고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그는 사회가 청년들이 마음 아파하는 파편들에 지금보다 좀 더 세심함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도 그런 부분에 일조하고자 한다. 

그는 그 동안의 활동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그의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만이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처럼 고비에 섰을 때 고민하지 않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사진 | 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