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가든디자이너라는 명예, 창의적인 도전의 결과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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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가든디자이너라는 명예, 창의적인 도전의 결과물이죠!
  • 오명철
  • 승인 2019.06.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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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화 아이디얼가든 대표

공부에 욕심이 많던 10대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꿈 많았던 20대에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느라 바빴다. 아들의 원인모를 증상을 고치기 위해 30대에는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여기까지가 대한민국 1세대 가든디자이너로 불리는 임춘화 씨가 보낸 젊음의 시간이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포기한 것도 많았을 텐데 오히려 그는 그것이 자신만의 특권이자 프로세스라고 말한다. “내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는 그의 말 한 마디는 묵직하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대를 뛰어 넘어 들려주는 인생 선배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정원이란 생명을 불어넣는 가든디자이너. 그 역할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먼저 의뢰인의 요구를 파악해 부지의 규모와 토양 등의 환경을 분석하고 정원의 스타일을 정한다. 연못을 놓을지, 화단을 만들지, 쉼터를 조성할지 등 공간을 디자인하고 그에 따른 시설물을 디자인한다. 만약 연못을 설치한다면 동그란 모양이 좋을지, 네모난 모양이 좋을지 등도 생각해야 한다. 식물로 연출하는 단계인 식재 디자인은 마지막 단계다. 나무를 심을지 꽃을 심을지 결정해야 하고, 꽃을 심는다면 어떤 종자를 택할지 고른 후 크기, 형태, 색깔, 질감 등을 감안해 식물을 배치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맡는 전문가인 가든디자이너는 예술적 감각과 공학적 지식, 그리고 인문학적 지혜가 필요한, 그야말로 융합적인 직업인 셈이다.

원예와 조경 등에 관한 지식은 물론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기에 해외에서는 가든디자이너 수업을 별도로 마련하는 경우도 있고, 도제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전문가로 키우는 곳도 많다. 국내에서 가든디자이너 전문 교육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임춘화 가든디자이너가 가든디자이너 전문가 코스 과정인 아이디얼가든 스쿨을 2004년 개설해 학생들을 배출한 것이 최초다.

아이디얼가든의 임춘화 대표는 영국 리즈 메트로폴리탄대(Leeds Metropolitan University)와 영국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e Society) 할로 카 가든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가든디자인 전문가 코스 과정(Visual and Creative Studies, Garden Design Certificate)을 졸업하고 도시경관 생태조경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의 소유자다. 다수 정원박람회 조성,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 총괄 등의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권의 책(‘행복한 놀이, 정원디자인’, ‘정원의 식재디자인’)을 낸 저자이자 한국정원디자이너 협회 회장, 한양대 공학대학원 조경생태복원 전공 겸임교수 등을 맡고 있다. 한국 가든디자인 업계에서 잔뼈 굵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1세대 가든디자이너로 불리는 그가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만든 수업이 바로 아이디얼가든 스쿨이다. 영국에서 배운 과정 그대로를 자신의 수업에 접목시켜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구성한 코스다. 한국 가든디자이너 발전을 위해 개설한 이 과정은 현재까지 31기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임 대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열정적이다.

대표님의 10, 20대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네요. 저는 소백산맥 산골짜기에서 나고 자란 시골 소녀였답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고 저는 장녀로서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돌보고 뒷바라지를 했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저는 늘 뭔가를 배우고 싶은 아이였어요. 마음껏 공부해보는 게 소원이었죠. 그래서 부모님 몰래 시험을 봐서 다행히 장학금을 받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도 그렇게 갔고요. 법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법대에 진학했어요. 대학을 진학할 때도 졸업하고 나서도 법 관련 일을 하는 게 꿈이었답니다.

대학 졸업 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대표님은 어떠셨나요?

대학 졸업 후 가장 힘든 건 불안감이었습니다. 제가 20대였던 당시 한국 사회는 남자만 공부를 시키고 대기업에서도 여직원을 뽑지 않았던 때였고 대부분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건 꿈도 못 꿨기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자기 스스로 생존해 나가야 했죠. 그때 심정은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공포감이 컸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똑같은 기분을 지금 청년들이 느끼고 있을 거예요. 왜냐면 이건 사회의 탓도 특정 시대에 국한된 것도, 나만이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국적 떠나 모든 사람이 20대를 지날 때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죠. 우리 딸도 늘 저한테 물어요. ‘엄마 나 뭐하고 살지라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줘요. “네가 서 있는 그곳에 계속 있다 보면 안개가 걷힐 거다.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인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라라고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셨잖아요. 커리어를 쌓을 수 있던 순간에 안타깝진 않으셨나요?

직장에 들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여자라서 커리어를 포기했다는 억울한 생각은 없었어요. 이것이 여성으로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엄마라는 특권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만약에 제가 남자였다면 회사를 계속 다니며 승승장구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여자인데 왜 남자랑 똑같은 프로세스를 가져야 하나요? 저는 여자인데요.

일을 택할 것이냐 아이를 택할 것이냐, 이건 개인의 선택 문제인 것 같아요. 하지만 포기한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요. 왜냐면 인생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거든요. 이 정도 살아보니 이제까지의 제 삶은, 제가 계획한 1%도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더라고요(웃음). 그러니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볼 때 일을 포기하고 가정을 택했다고 해서, 반대로 가정을 포기하고 일을 택했다고 해서 그 결과는 별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정원 공부를 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국에 간 건 정원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둘째 아들이 꼬마였을 때 원인모를 언어장애로 고생을 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증상의 원인도 알아 볼 겸 가족 모두가 의기투합해 영국행을 결정했어요. 물론 지금은 아무 이상이 없고 그때도 큰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정원과의 만남은 한국에서였어요. 살던 집에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식물로 꾸미는 걸 너무 좋아했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가꿔도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전문가다운 멋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늘 어딘가 미숙하고 아마추어 같았죠. 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는데 그 방법을 영국에서 찾은 거예요. 영국에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뭔가 배우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가든디자이너 수업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커리큘럼을 보자마자 , 이거다하고 바로 등록했어요. 제가 늘 궁금했던 모든 내용이 있었거든요. 그 수업이 바로 Visual and Creative Studies, Garden Design Certificate입니다. 그런데 첫 수업을 듣고 알게 됐어요. 취미반인줄 알았는데, 전문가를 위한 코스였다는 걸요(웃음).

용어부터 생소하셨을 것 같아요. 그 어려운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셨다고 들었어요.

수업에서 과제를 내주면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용어의 뜻을 찾는 것부터였죠. 예를 들면 도면이라는 뜻을 찾고 이해하기까지가 이틀 정도 걸렸고, 또 도면을 그릴 때 필요한 전문 도구를 구하는 데 이틀이 걸렸어요(웃음). 밤샘은 기본이었죠. 눈을 떠보니 아침이고 그랬어요. 그때 , 내가 이 일을 진짜 재밌어하는구나알았죠.

한국으로 돌아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전혀요. 당시 한국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직업이 전무했던 터라 직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제가 영국에서 이런 공부를 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 강의를 들은 조경회사, 대학교에서 또 의뢰가 들어왔고요. ‘제가 가진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자신감을 갖고 영국에서 배운 코스를 그대로 적용해 수업을 만들었어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제대로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디얼가든이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도 냈죠. 그게 2004년도예요. 그리고 그때부터 정말 가든디자이너의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가든디자이너라는 말조차 생소했을 때인데 전문가 과정까지 만드시다니 용기가 대단하세요. 청년들도 이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기업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고 미래가 불안하다면 자기 스스로 무언가 개척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너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도전을 연구하고 시도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요즘 청년들은 멀티플레이 능력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능력만 가지고 있지 않죠. 그래서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가면 하나의 능력만 사용하게 되니 일이 지루해지고 쓸모없는 존재같이 느껴져 결국 이직을 하는 겁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라가거나 주어진 일을 하지 말고 이미 존재하는 오리지널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접목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만드세요. 저는 지금의 2030세대가 조직에 소속되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이 그들 자신이 미래에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 체계를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20대를 돌이켜봐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스마트폰의 세상이 될 줄 30년 전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자신만의 일을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기에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 이것저것 해봐야 합니다. 청춘의 모든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다. 무얼 하든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에요. 다양하게 시도하고 경험해보면 분명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그때 그 일을 파고들면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속 하다보면 기회가 찾아옵니다. 기회는 자석과도 같거든요. 그때 용기를 가지고 그 기회를 감사하게 잡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싫을 때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 보는 게 좋아요. 좋아하는 정도가 클수록 그 일이 자신을 힘들게 할 때도 참을 수 있습니다. ‘뭔가 멋져 보이는데 한 번 해볼까?’ 이런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금방 지치게 됩니다.

·사진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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