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1페니’ 커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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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페니’ 커피하우스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9.12.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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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교수의 커피이야기

 

영국 최초 커피하우스는 1650년 한 유대인에 의해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1657년 토마스 가웨이가 런던에 커피하우스 가웨이를 열고, 커피와 코코아, 그리고 차를 판 것이 시초다. 가웨이는 한 발 더 나아가 1660년 차 선전용 팸플릿을 만들어 여름이나 겨울이나 마시기 적당한 온도의 음료, 늙을 때까지 건강을 유지시켜 주며 질병을 치료하는 음료30개 항목에 걸친 차의 효용을 선전했다. 커피하우스는 점차 인기를 얻어 1715년 런던에만 2000여 개가 생길 정도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사교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교역과 정치, 그리고 문학을 논의했다. 1677년도의 한 문헌에는 의회 해산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할 엄두를 못 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정도로 토론의 장으로 발전되었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런던의 로이드 회사도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로이드는 1688년에 선원들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 커피하우스에서 배의 화물과 운송 일정에 대해 논의했고, 런던의 보험업자들은 운송 보험을 팔기 위하여, 상인들은 운송 일정을 확인하기 위하여 로이드의 커피하우스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로이드 보험회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파리에서는 1670년대에 터키식 복장을 한 행상들이 돌아다니며 커피를 팔았고, 커피하우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인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가 1686년에 파리 생제르맹 시장 근처에 문을 연 카페 르 프로코프'가 특히 유명하다. 그곳에는 디드로, 달랑베르, 루소, 볼테르, 뷔퐁 등 계몽주의 시대의 쟁쟁한 문인과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 카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계몽주의자들에게는 토론의 장이고, 파리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뉴스 공급처로 손님 중에는 정부 스파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바스티유 감옥에 보관된 문서에는 당시 카페에서 수집한 정보나 사소한 대화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보통 1~2펜스로 이용료 1페니를 내면 누구든 출입이 가능했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2펜스를 내면 신문과 등불도 이용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17세기 커피하우스는 종종 ‘1페니 대학으로 통한다. 단골손님들은 커피하우스에 도착한 직후나 떠나기 직전에 1페니를 카운터에 올려놓음으로써 계산을 했다.

근대의 팁 문화는 이 시기 커피하우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자에는 신속한 서비스 보장(To Insure Promptnes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TIP)’이란 말은 이 문구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카페에 가면 하나같이 바리스타들이 근무를 했다.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근대 영국의 여성 바텐더라는 직업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17세기 중반에 차를 접하게 된다. 찰스 2세의 아내가 된 포르투갈 공주 캐더린은 영국에 올 때 차와 도구, 차를 준비하는 사람까지 데려와 이때부터 차를 마시는 문화가 왕실에 정착하게 되었고, 18세기 초에 이르자 상류층으로 번져 갔다. 모든 계층이 즐겨 마셨던 술은 점차 상류층의 식탁에서 밀려났고 이국의 기호품인 차, 커피, 초콜릿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커피하우스에서도 차와 커피는 번성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다. 오늘은 커피와 비슷한 홍차 한 잔을 마셔보면 어떨까.

김수진 교수(백석예술대학교 커피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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