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왜 백성들이 사랑하는 막걸리를 금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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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왜 백성들이 사랑하는 막걸리를 금지했을까?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1.01.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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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 / 막걸리

전 세계의 다양한 주류가 수입되면서 국내 주류 시장에서 수입 주류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전통주 하면 여전히 막걸리가 손꼽힙니다. , 누룩, 물 이 세 가지 원료로 만드는 막걸리는 벼농사와 함께 태어난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신선한 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막걸리가 익는 데 3일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의 뜻도 쉽습니다. ‘막 걸러서 먹는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라고 불렀죠. 막걸리는 이름의 뜻처럼 그 제조방법 또한 매우 쉽습니다. 주원료인 쌀 중에서도 주로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을 찌고 수분을 제거한 뒤 누룩과 섞어 물을 부어 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술 항아리에서 술 익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적당히 발효됐을 때 찌꺼기만 대충 걸러 내면 뽀얀 막걸리가 만들어지죠.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대개 5~6도인 데다 탄산이 들어 있어 큰 잔에 따라 시원하게 들이켜기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옛적부터 농부들은 일을 잠시 멈추고 새참을 먹을 때나 점심을 먹을 때 막거리 한 사발씩을 들이켜곤 했답니다. 농사일이나 힘든 집안일을 하다가 마시는 막걸리는 목 넘김이 시원하고 포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영양에도 좋았거든요. 오늘날에도 농사일을 하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 부르는 지역이 많답니다.

막걸리는 탁주(濁酒)’라고도 불립니다. ‘맑은 술을 뜻하는 청주(淸酒)’와 대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청주는 백자로 된 잔이나 놋으로 만든 잔에 부어 마시지만 막걸리는 그 이름 만큼이나 소박한 잔에 따라 마셔야 제격입니다. 요즘에는 이리저리 긁히고 찌그러진 값싼 양은으로 만든 주전자와 잔에 부어 마시지만 이조차도 없던 조선시대에는 바가지에 부어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마시는 다른 술에 비해 일부러 흘리면서 마시고 김치나 소박한 반찬을 안주로 먹는 것이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농민과 서민들에게 사랑받던 술이 한때 금지된 적이 있답니다. 조선에서는 가뭄 등으로 쌀이 귀해지면 쌀로 술을 만들고 그 술을 소비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큰 흉작이 든 1758년 영조는 궁중의 제사에도 술 대신 차를 쓰도록 했지요. 일제 강점기에도 집에서 쉽게 만들어 마시던 막걸리를 허가받지 않은 술이라며 금지했고요. 이 덕분에 막걸리는 비밀리에 만들어 먹는 술을 의미하는 밀조주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답니다.

해방 후 막걸리는 다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주재료인 쌀 대신 밀가루로 술을 빚으며 맛이 전과 달라지자 예전만큼 사람들이 찾지 않았습니다. 1971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것이 다시 허용되었지만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맥주, 양주, 소주, 와인 등에 밀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최근 들어 각 지방의 특색 있는 방식으로 제조된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들을 한 데 모아 즐길 수 있게 한 막걸리 바도 성업 중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고 있다고 하니, 과연 막걸리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김영훈 지음, 글담출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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