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소리를 입혀 공간감을 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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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소리를 입혀 공간감을 전달하다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1.11.12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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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영화 속 이색직업_‘봄날은 간다’ | 폴리아티스트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장면에 어울리는 효과음이 아닐까. 배우의 세밀한 감정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스크린 뒤에서 열연을 펼치는 음향의 마술사는 누구일까. 이 소리 연기자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화면에 갖가지 효과음을 적절하게 입혀 관객이 화면 안에서 함께 호흡하게 한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상우와 은수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속 아름다운 소리들과 어우러져 그림같이 펼쳐진다. 새벽에 내린 첫눈을 밟는 소리, 대나무밭에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부드러운 소리, 눈 내리는 절에서 고요하게 퍼지는 풍경 소리가 사랑의 장면에 포근함을 더해준다.

상우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렇게 영화의 효과음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뉜다. 빗소리, 도시 소음 등 영화의 배경음을 담당하는 앰비언스 파트가 있고, 물질이 움직이는 소리를 수집, 응용하여 믹싱하는 하드 이펙트 파트가 있다. 그리고 효과음의 꽃인 폴리아티스트이다. 폴리아티스트들은 사람이 움직여서 소리 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조금은 생소한 이름, 폴리아티스트. 우리가 보는 영화 대부분이 그들의 손을 거쳐 생동감을 얻는다. 어떻게 하면 폴리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폴리아티스트가 하는 일

폴리아티스트는 할리우드 효과음의 전설인 잭 폴리(Jack foley)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잭 폴리는 발소리만으로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재능을 가진 인물로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소리 연기를 통해 다양한 효과음을 만들어 영상에 소리를 입혔다. 효과음을 입힌 장면들은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전달됐고, 이는 영화 효과음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한 작품당 평균 2000여 개의 효과음이 삽입된다. 폴리아티스트들은 영화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대사)와 영화 배경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창조해낸다. 다양한 소품을 활용하거나 직접 행동을 재현하면서 실제와 같은 음향을 만들어 내는 음향 전문가이다. 실제로 영화를 촬영할 때 배우들의 목소리를 제외한 미세한 주변 소리들은 동시 녹음이 잘 되지 않아서 따로 소리를 녹음하여 촬영된 화면에 입힌다. 걸음걸이나 옷깃 스치는 소리, 결투 장면의 효과음들을 만들어낸다. 영화 사운드 분야에서 유일하게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따르는 만큼 아이디어와 창작 활동이 기본이 된다.

폴리아티스트의 전망

한국에서 폴리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겨우 20년 남짓이다. 이전에는 생 효과등으로 불리었으며 생 효과를 담당하는 이들은 효과맨이라 불렸다. 영화과 학생들도 2, 3학년 정도 되어야 폴리아티스트란 분야를 알 만큼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이며, 폴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10여 명으로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반면, 할리우드에서는 창작에 대한 예술성을 인정해 폴리아티스트가 특대우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 산업 전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최근 국내 영화, 방송, 미디어, 애니메이션 산업이 성장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만큼 대우도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채널들이 더욱 다각화되면서 콘텐츠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전망이 밝아지는 추세이다.

 

폴리아티스트에게 요구되는 능력

기본적으로 소리를 다루고 창조해 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일상의 여러 소리를 듣고 기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 재현해 내기 어려운 소리나 만들어 내야 하는 소리 등 여러 상상 속의 소리를 구체화시켜 소리로 표현해 내야 해서 상상력과 창의력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영화의 전체 컨셉을 이해하고 배우의 감정과 행동을 분석해서 그에 맞는 소리를 재현해 내기 때문에 역할의 나이, 성별, 감정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파악한 만큼 그에 맞는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

촬영 시 정확하게 녹음하기 어려운 소리들을 폴리아티스트 부스에서 창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어내는데, 대부분의 작업은 부스에서 이루어지지만 부스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소리가 필요할 때에는 외부에 나가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쇄물이나 옷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기획, 실행, 수정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이는 관객들이 영화 속에 몰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업무상 다른 부서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특히, 영화감독이 추구하는 영상 컨셉과 창조해 낸 소리가 잘 어울리는지 수시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의견이 다를 경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폴리아티스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다 마신 음료수 캔 하나까지도 소리만 낼 수 있는 도구라면 무엇이든 소중한 보물로 여긴다. 남들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실감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도구들이다. 작업을 위해서는 영화 한 편을 몇십 번이나 돌려보아야 한다. 또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위해서 캐릭터에 대한 공부를 물론, 대사까지도 모두 외워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소리를 다루다 보면 툴을 써야 한다. 컴퓨터에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을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가 얼마나 적합한 소리를 입힐 수 있는지와 직결된다. 사람들이 입힌 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폴리아티스트가 되려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문적인 기관 및 관련 자격증이 없는 상태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폴리아티스트 교육을 위한 인턴 제도를 마련하고는 있으나 소리나 음향에 대한 기본 지식이 중요해서 대부분 음향이나 영화 사운드 전공자들이 이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호주 등 외국에는 폴리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으나 국내에는 현직 폴리아티스트가 제자를 키워나가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아쉽게도 전문적인 양성기관이 없어 영화 현장에 입문하여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배워 나가는 것이 빠르다. 회사에 소속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한다. 국내 학교들의 관련 전공으로는 음향엔지니어 전공, 음향전공, 영화음악전공 등이 있다.

/ 이은지 기자 leeeunji_0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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