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향을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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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향을 디자인하다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1.11.12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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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영화 속 이색직업_‘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조향사

15년 전 개봉한 영화 향수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개봉 당시, 감각적인 음악과 충격적인 결말,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로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향수의 줄거리와 함께 주인공의 직업인 조향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루누이는 태어나자마자 생선시장에 버려진다. 불행한 삶 속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천재적인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파리에서 운명의 여인으로부터 매혹적인 향기를 느낀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향수 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로 들어가 조향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뛰어난 후각으로 파리 전역을 열광시킨 최고의 향수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던 그는 해결책을 찾아 향수의 낙원, 그라스로 향한다. 그라스에서 향기를 가두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드라마,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향이 나는 듯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교차된다. 영화 속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루누이의 직업은 조향사로 향기를 만들어 낸다.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는 후계자로 들어가는 것을 조향사가 되는 과정으로 서술했다. 오늘날 조향사는 어떤 직업인지,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조향사, 향의 종류에 따라 두 갈래로 분류

조향사는 여러 가지 향의 원료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향이나 필요한 향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조향사라고 하면 향수를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조향사는 만드는 향의 종류에 따라 Flavorist(이하, 플래이버리스트)Perfumer(이하, 퍼퓨머)로 분류된다.

플래이버리스트는 식품이나 상품의 향을 다룬다. 식품을 다루기 때문에 입과 코를 모두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고, 인체에 해가 되는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향의 안전성을 체크하는 일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식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기 때문에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향에 대해서는 선호도가 지극히 낮아진다. 그래서 플래이버리스트는 자연의 향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퍼퓨머는 입은 사용하지 않고 코만 사용하는 조향사이다. 이 분야에서는 조향을 하는 향의 원료가 천연인지 아닌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의 후각을 자극하여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는 아름다운 향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좋아할 만한 향을 찾아야 하기에 플래이버리스트들보다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이다. 영화 속 장바티스트 그루누이는 퍼퓨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분야 모두 실제 소비자와 고객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향사는 향료를 배합하여 향을 만들어 내는 지식뿐 아니라, 시장상황이나 향의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조향사의 직업 전망과 필요조건

조향사의 미래 직업 전망은 좋은 편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건강과 웰빙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 따라 식품이나 건강음료, 아로마 테라피, 화장품 등에도 좋은 향과 맛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조향 산업이 큰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점차 유행 및 개성에 따른 소비자의 향수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등에도 성능뿐만 아니라 향도 고려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어 향은 상품의 품질과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조향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만, 그 수는 화장품회사, 식품회사, 향수회사, 향료회사 등에 소속되어 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조향사를 포함 약 60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화장품회사 연구실에서 실적을 쌓거나 외국에서 조향학을 공부한 경우가 많다.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향을 식별할 수 있는 우수한 후각이 필요하다. 재능이 없더라도 훈련을 통해 일반인의 수십 배까지 향을 식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천 종에 달하는 원료를 조합하는 일이기에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향은 창의력에 감수성이 더해졌을 때 만들어진다.

수천 가지 향을 일일이 기억하고, 배합하고, 다시 맡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5~10년간의 훈련을 견디면 전문 조향사가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향사들은 미세한 향을 구별하는 꼼꼼함과 함께 인내심을 기본 태도로 지니고 있다.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향료, 천연 향료를 분석하고 모방하며 훈련해야 한다. 이때 화학 지식이 필수적이다. 유수의 조향 학교에서는 높은 수준의 화학 지식과 화학 관련 학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조향과 관련된 논문이나 서적 자료 대부분은 영어로 되어 있고, 원료 수입으로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라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향사로 향하는 4가지 로드맵

(1) 조향 전문학교를 통과하는 로드맵

향료 교육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해 향료에 대한 기초지식과 조향 기본교육을 이수한 후 전문 조향사가 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조향 전문학교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로는 프랑스의 ISIPCA, 일본의 NIFFS가 있다. 이 학교들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학생들로 인정받아 향료회사에서 많이 채용한다. 실제로 이 학교 출신의 조향사들이 현재 많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 향료회사를 통과하는 로드맵

대학 졸업 후 향료회사에 입사해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조향 교육 및 연수를 받고 조향사가 되는 방법도 있다. 이런 경우, 입사 전 후각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선행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불화농, 서울향료, 키맥스향료, 보락향료 등이 대표적인 향료 회사이며, IFF, Givaudan, Quest, Takasago, H&R 등과 같은 유명한 외국계 향료 회사들도 있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교육과정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3) 일반회사를 통과하는 로드맵

화장품회사나 식품회사, 향수회사 등 향료 분야 회사에 입사하여 조향 교육을 받은 후에 조향사가 되는 방법이다. 주로 향료회사에서 제공받은 여러 가지 향들을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 평가하는 일이 많다. 향료회사의 조향사처럼 전문적인 조향을 주업으로 하진 않지만, 필요에 따라 제품의 특성을 살리는 조향을 하기도 한다. 아모레퍼시픽, LG화학, 제일제당, 롯데제과 등에 향료 관련 부서가 개설되어 있다.

 

(4) 관련학과/사설 교육을 통과하는 로드맵

전문대학의 향수화장품학과, 향장공업과, 피부미용과나 사설 교육을 통해 향을 감별하는 능력을 기른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조향사 관련 국가자격이나 국가기술자격은 없다. 하지만 민간자격을 취득하면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여 맞춤 향수 전문점에서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원하는 향을 주문받아 조향해 주는 프리랜서 조향사로 일할 수 있다.

세계의 조향 전문학교

프랑스 ISIPCA1970년 장 폴 겔랑(Jean-Jaques Guerlain)에 의해 설립되었다. 베르사이유 대학과 연계하여 향수, 화장품, 식용향료 분야 관련 학위 준비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기술과 상업성을 갖춘 고급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인 세계 최고의 조향 전문학교이다. 향의 화학에 관한 이론과 실습교육을 병행하여 높은 수준의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교육기관으로, 특히 향수 분야에 수많은 실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의 NIFFS2001년 개교한 일본 최고의 조향사 양성 교육기관이다. 2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세계적인 조향 스쿨로 알려져 있는 만큼 전문적이고 특화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NIFFS는 향료회사나 화장품회사 식품회사 취업을 위한 전문적인 향료 교육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식품향료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Flavor와 향장향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Fragrance과로 세분화되어 운영하고 있으며, 입학 자격은 ISIPCA보다 간단해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만 충족되면 입학할 수 있다.

/ 이은지 기자 leeeunji_0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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