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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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에너지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2.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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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수 교수 칼럼
서창수 순천향대학교 교수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발도상국가를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Officai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상당한 금액(거의 1조 원대)을 개발도상국가에 지원하고 있다. 과거에는 식량, 의료와 같은 인간 삶의 기초적인 것에 대한 지원이 많았으나, 재화나 서비스의 직접적인 제공은 오히려 수혜국들을 지원에 더 의존하게 할 수가 있다는 우려에 따라, 최근에는 빵을 직접 제공하기보다는 빵 만드는 법을 전수하자는 취지로 교육, 창업, 혁신과 같은 주제로 우리나라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한국이 다른 개도국보다 더 잘 살게 된 이유

이러한 지원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지 상황에 대한 분석도 하고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한다. 필연적으로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나 민주화 과정, 최근의 한류 이야기까지 성공한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그러면 반드시 현지인들의 질문이 잇따른다. 모든 나라가 거의 같은 질문들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짧은 기간에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느냐, 한국보다 더 잘 살았거나 형편이 더 좋았는데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는데, 한국은 더 어렵고 더 가난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개도국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나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잘 사는 나라가 계속 잘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못 살던 나라가 추월하여 더 잘사는 것은 모든 개도국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미래에는 한국과 같이 되고 싶다는 가슴 뛰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사례는 개도국 사이에서 더 큰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진정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잘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많은 답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국가의 강력한 미래 비전설정과 체계적인 경제개발 계획, 그리고 리더십, 국민들의 교육과 강한 성취욕, 기업들의 강력한 기업가정신과 도전 등 분야별로 다양하게 분석 제시되었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반응은 별로다. 왜냐하면 많은 국가에서 그런 정도는 이미 거의 시도를 했지만 성공한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개발과 교육,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거나 했지만 한국과 같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이 가진 진정한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한국인만이 겪은 결핍(Deficiency)’절박함(Desperateness)’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들은 겪지 못한 한국인들만의 가난과 궁핍, 생존의 절박함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였고, 치열하게 만들었으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게 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고 처참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40여년 동안 나라를 통째 잃었고, 겨우 독립이 되는가 싶더니 나라가 두 개로 쪼개졌다. 이어서 같은 민족을 죽이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계속 상처를 입으며 만신창이가 되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 폐허였고 몰락이었다.

당시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생존하느냐로 살았다. 죽느냐 사느냐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의 레토릭이 필요 없는 가장 처절하고 절실한 배수의 진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고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거창한 경제학적인 이론이나 개발론적인 사례들은 의미가 없었다. 그런 것은 사치였고, 그것들은 당장 생존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성장은 서양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냥 살기 위해 전진했던 그 처절한 생존 근성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인의 DNA로 체화되었다. 우리가 인지하든 안 하든 우리 문화와 몸속에 잉태되었다. 처절했던 만큼 그 강도는 세다.

 

결핍과 절실함은 변화와 성장의 원동력

ODA 지원을 받는 지금의 개도국과 지원을 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결핍의 경험과 절실함의 차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체계적인 개발계획이나 교육과 같은 것은 어느 나라나 시도하지만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결핍절실함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처절한 환경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부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자원이 빈약한 나라는 상대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된 현상을 오늘날 볼 수 있다. 이른바 풍요의 역설이다. 역시 절실함의 문제다.

궁핍이나 어려움, 절실함은 우리의 성장의 원동력, 변화의 에너지이고 소중한 자산이다. 원해서 그런 상황을 겪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인은 자신들과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은 한국인은 목표지향적이고 새로운 것을 선호하며,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며, 경쟁을 좋아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것이 음악과 춤, 영화와 드라마, 스포츠와 음식 등 각 분야에서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K-Something’을 만든다. 경제적 성장을 넘어 정치적 민주화, 이제는 문화적 소프트 파워에서까지 세계 10위권을 석권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인이 그간 겪었던 결핍감, 박탈감, 절실함, 수치심, 분노, 시샘, 경쟁심이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지속적인 부각은 단순 교육이나 리더십, 국가 계획이나 자원론으로는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궁핍론이 잘 설명하고 있다. 궁핍을 무한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한국인의 남다름이고 지혜이며 저력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한국의 기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궁핍하고 어려운 개발도상국들이 왜 계속 가난에서 탈피하지 못하는가? 모든 궁핍이 혁신의 에너지로 승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 원인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사례는 더 이례적이고 세계의 관심을 끈다.

문제는 우리도 이제 궁핍의 정신(Hungry Spirit)’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궁핍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만의 무기였던 무엇인가 해보자던 정신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선진국들도 대강 그런 패턴이었다. 과거 궁핍할 때 열심히 일했고, 성공하여 가난을 탈피하면서 느슨해졌다. 역사와 부의 순환 패턴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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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수 교수는…

순천향대학교 창업지원단장

순천향대학교 일반대학원(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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