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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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2.09.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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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 문화기호읽기 7
노진화 박사(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

괴테의 <이피게니에, 1779>는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큰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친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 출전을 앞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BC. 408-406> 속편이자,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니아, BC. 480-406>의 변용된 희곡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피게니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보호로 흑해 연안 타우리스의 여사제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생을 슬퍼했다. 어느 날, 이방인들을 신에게 인신 제물로 드릴 참이었다.

그 중 한 명은 복수의 신에게 쫓기는 살인자였다. 그는 어머니(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아이기스토스, 튀에스테스 아들)를 죽이고 그곳까지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아가멤논)을 살해했고 그는 아버지에 대한 원수를 갚은 것이었다. 그는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서 떨어진 나무 신상을 가지고 그리스로 돌아가야 했다. 이피게니아의 남동생 아레스토스였다.

남매는 극적으로 상봉한다. 그러나 그리스로 돌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그녀는 여신의 사제였으며, 토아스 왕은 그들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에우리피데스와 괴테의 <이피게니에>는 캐릭터 성격과 결말이 다르다. 전자는 사제를 버리고, 국왕을 속여 동생과 그리스로 도망하기로 한다. 그들을 뒤쫓는 토아스는 함선을 나포하려 하지만, 아테나가 나타나 말린다. 배는 그리스를 향해 나아갔다.

후자는 현대적 인물이다. 그녀는 신과 사제 간, 왕과 여인 사이에서 균형적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토아스 왕과 열띤 토론을 통해 관습도 넘어선다. 토아스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로 한 이피게니에. 왕은 크게 분노하였으나 그들을 그리스로 떠나보내기로 한다. “잘 가시오!” 휴머니즘의 반영이다.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출처: 노진화 박사)

신화의 변용과 해석

신화의 변용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에서 헤시오도스, 핀다로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래스, 에우리피데스 등의 시인들과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세네카 등의 로마 문인들로 이어진다. 모티프는 인간 실존, 무의식, 심리,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의미체계다.

신화의 상징들은 주로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프로이트는 신화를 무의식적 투사, 재현,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욕망을 간접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융은 민족정신의 균형적 발달을 위한 의식의 표상이라고 주장했다. 프레이저는 왕 살해 풍습은 나쁜 기운을 대속해 줄 희생양의 민족 신화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클라인은 원초적 불안이 영웅의 통과의례를 겪고 나면 위태롭던 환경이 안전한 환경으로 변화된다고 하였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기호학자 바르트는 문화 코드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신화를 해석하였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고대 그리스 초기 극장은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던 제의 형식에 가까웠다. 신들의 좌석은 맨 앞자리였다. 무대에서 배우가 노래할 때, 코러스는 신화의 전승을 더 사실적으로 전해주기 위해 춤과 음악으로 인물과 관객을 통합시켰다. 비극은 디티람보스(합창 대화)에서 점점 연극으로 발전했다.

단골 주제는 아트레우스 가문이었다. 탄탈롭스는 아들 펠롭스를 요리했다. 신들은 분노했고 그의 자녀 펠롭스와 니오베, 손자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증손주 아가멤논과 아이기스토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토스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불륜, 납치, 근친상간, 친족 살인의 저주가 계속되었다.

관객들은 플롯으로 재현된 주인공들의 복수, 욕정에서부터 권선징악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 처리할 수 없었던 감정들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지성의 척도들을 배웠다. 아가멤논에게 분노했다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연민을 느꼈다가, 오레스토스와 엘렉트라에게 윤리적 결과를 물었다.

이에 플라톤은 비극을 실재(이데아)를 왜곡한다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완성된 행동의 모방, 연민과 두려움을 통해 불완전한 감정을 정화(카타르시스)한다고 주장했다. 배르그송은 슬픈 것을 더 슬픈 것에 의해 몰아내는 정화론을 주장했다. 니체는 비극이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하고 긍정하는 것, 극복하고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과학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수록 혈액과 뇌의 엔도르핀 농도가 높아지고, 동시에 고통을 느끼는 임계점도 상승한다고 말한다. 공포영화, 롤러코스터, 스포츠, 연극치료 원리다. 극적 감정을 통해 숨은 감정을 마침내 배설해내는 것이다.

 

내 인생의 멋진 서사시

우리는 일상에서 신화와 함께 살고 있다. 오늘날 신화가 구현하는 세계는 성공 아니면 실패, 생명 아니면 죽음, 용서가 아니면 복수다. 행복은 선, 불행은 부정적 징후로 치부된다. 그러나 어떤 것도 양극단은 없다. 둘 다 서로 붙어 다니다가 어느 날 하나가 먼저 드러났을 뿐이다.

이피게니에는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에 의해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 살아남았으나 행복해질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인생이었다. 어머니를 죽인 자 오레스테스도 마찬가지였다. 남매는 자신들이 비극을 주인공이자, 자신의 비극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이다. 관객도 이중적으로 주인공과 동일시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작가는 글을 통해 세계를 창조한다. 창조자는 아침의 비극을 저녁에 희극으로 바꿀 수 있고, 플롯을 바꾸고 주체와 조력자, 반대와 구원자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작가는 이피게니에를 고요하고 성스러운 곳에 숨겨둠으로써 가문의 저주를 끝낸다. 그리스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다.

내 인생의 창조자는 . 비극을 통해 느꼈던 수많은 감정, 그리고 해결되지 못한 해석들이 남아있다. 그 무엇을 직면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의 각본을 남이 쓰도록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삶은 멋진 서사시가 될 수 있다. 내 인생은 비극이 아닌 희극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미래의 마지막 날에 오늘을 회상하기를, 이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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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는…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現)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 &인지기호 LAB 연구원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realroji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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