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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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요?
  • 오명철 기자
  • 승인 2022.10.11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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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이야기 / 루시아 카르미나티(Lucia Carminati)

20213, 거센 바람으로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항로를 이탈했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가벼운 사고로 끝날 일이었죠. 하지만 수에즈 운하에서는 세계적인 위기가 되었습니다. 선박 한 척이 다른 선박들을 그저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로를 막아서 국제 무역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승인 받아

수에즈 운하가 있는 자리는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이 지역 통치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지중해 유역 사이에서 상품을 옮기기 위해 무역상들은 홍해와 나일강 사이의 좁은 지협을 가로질러야만 했고, 낙타를 끌고 험한 사막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인도양과 지중해 사이에 해상 통로가 있다면 이러한 여정을 건너뛸 수 있었습니다.

16세기 내내 여러 강대국이 운하를 건설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막대한 자금, 정치적 갈등,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래에 가로막혔습니다.

1798, 운하 건설에 관한 관심이 되살아났고 이번에는 유럽 전역이 주목했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인들이 이집트의 통치자들에게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들은 이런 제안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정치적, 경제적 자치권이 점점 커지면서 이집트 정부는 이 사업의 추진을 열망했습니다. 1854년에 권력을 잡은 사이드 파샤는 진취적이고 교활한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계획을 결국 승인했죠.

1854년과 1856년에 체결된 특권은 두 가지로, 드 르셉스는 수에즈 운하 회사를 설립하고 모든 국가의 자본가들에게 지분을 매각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사이드 파샤와 운하 회사 사이의 계약은 수십만 이집트 노동자의 노동력도 약속했고요.

 

운하 건설 중 3개 도시 탄생

1862년부터 시작해서 노동자가 매달 약 2만 명씩 강제 징집되어 열악한 사막에서 운하를 파냈습니다. 식량이나 물은 쉽게 구할 수 없었습니다. 콜레라 같은 질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노동자들은 채찍으로 위협받으며 힘들게 일했습니다. 건설 중 사망한 사람들이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1864년 이집트의 새로운 통치자 이스마일 파샤가 이집트인 강제 노역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여전히 건설을 강행했습니다.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준설기와 굴착기를 사용해서 흙을 74백만퍼냈습니다. 막대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기반 시설을 설치해서 식수와 다른 보급품을 수송해야 했고 이로 인해 식당, 매춘업소, 밀수품 경제가 번창했습니다.

북새통 속에서도 여러 민족이 사는 새로운 도시가 3개 탄생했습니다. 북부 지중해 해안의 포트 사이드, 운하 중간 지역의 이스마일리아, 운하 남쪽 끝의 포트 투피크입니다.

전 세계 선박 수송의 약 30%가 수에즈 운하 통과

건설 현장은 나일강을 건너뛰고 포트사이드에서 수에즈 운하로 직행했습니다. 몇 년간의 공사 끝에 두 바다의 흐름이 마침내 1860년대 중반에 합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완공된 운하는 길이 164km, 표면에서 너비는 56m입니다. 그리고 18691117일에 공식적으로 개통되었죠.

운하는 처음 몇 년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세계 무역을 극적으로 가속화했습니다. 수많은 해양 종의 이동도 촉진하여 지역 생태계와 음식에 인상적인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운하를 통한 교통량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1875년에 이집트는 재정문제로 운하 회사 주식의 상당량을 팔아야 했고, 영국이 이를 인수했습니다.

이집트로 운하의 통제권이 넘어간 때는 1956년입니다. 80년이 넘어서야 통제권이 이집트로 완전히 반환되었습니다. 그때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운하를 국유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촉발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해결이 되자 운하는 이집트의 주요 수입 원천으로 변모했습니다. 운하의 제국주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요.

오늘날 전 세계 선박 수송의 약 30%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모두 2만 척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에버 기븐호 사건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되새겨 줍니다.

출처 / www.ted.com

정리 / 오명철 기자 mcoh98@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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