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도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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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도는 누구인가?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2.11.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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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 문화기호읽기 9
노진화 박사(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

사무엘 뷔케트(Samuel Beckett, 1906~1989)<고도를 기다리며>는 고전적인 실존주의 소설이다.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언제부터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려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고도를 기다린다.

이들은 고도가 오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블라디미르가 상상하는 고도는 마지막 순간, 멀지만 뭔가 좋은 것이다. 그는 구원받는 도둑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에스트라공에게 고도는 이유 없는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채워야 할 그 무엇이다. 주인공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신발과 모자를 살피고 아무 주제나 말하기, 질문하기, 흉내 내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기다림을 포기하고 자살도 생각한다. 그러나 곧잘 어제를 잊어버리고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침 포조와 럭키가 지나간다. 땅의 주인 포조는 채찍을 들었고, 럭키는 짐을 든 채 서서 잠이 든다. 이들은 고도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며 시간을 재촉한다. 언어는 고유성을 상실한 채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는 것 같다. 주종 관계는 종주 관계로, 다시 주종관계로 반복되고 서로에게 묶여 있으나 묶인 것을 모른다.

혹자는 포조를 고도(godot)라고 말하고, (god)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극 중에서 끝내 고도라는 인물을 드러내지 않는다. 극 중 소년의 말을 통해 유추해 볼 뿐이다. ‘고도는 흰 수염을 가졌으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양을 돌보며 소년의 동생을 때리는 자다.’ 정말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가 맞는 것일까.

<출처: Matthew Thompson>

부조리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 투성이다. 부조리란 음악에서 주로 쓰이는 불협화음이라는 뜻이다. 소년이 말하는 고도의 모습은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 이는 기다리는 대상의 완벽성은 깨어지고 기다림 후에 올 것들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린다.

블라디미르의 텅 빈 모자와 에스트라공의 텅 빈 신발은 부조리한 이상적 자아와 현실 자아의 괴리감을 더욱 드러낸다. 둘의 관계는 우정, 한 몸을 상징한다. 모자는 지식을 상징한다. 럭키는 모자를 쓸 때 지식인으로 변한다. 신발은 육체를 의미한다. 모자를 자주 살피고, 텅빈 것을 흔들어대는 것은 혼돈이다. 혼돈을 참지 못하니 어떤 것이라도 한다. ‘뭘 하지?’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감, 기다림은 불안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소비다.

주인공들의 반복적 행동은 <개의 죽음에 관한 노래>로 처지를 대변한다. “개 한 마리 들어왔네. 주방장이 때려 죽였네. 친구들이 묻어주었네.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인간은 행복, 성공, 자유, 구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이때 욕구의 힘은 쾌락보다 크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고, 감내해야 할 위험의 수준이 커지면 상상의 폭은 좁아진다. 고통도 따른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사회의 질서. 어느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것을 포기해야 한다. 욕망의 실패가 연속되면 공허와 지루함이 자리 잡는다.

고도를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지만, 고도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작가조차도 고도라는 실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당시 1~2차 세계대전으로 고통 받았던 시기에, 기다림은 열두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았다.

포조가 럭키를 학대할 때, 인간은 비참한 존재였다. 이들은 포기하고 싶지만, 지속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루비 콘(Ruby Cohn)은 <Casebook on Waiting for Godot>와 논문에서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이며, 이 행성에서 우리의 짧은 삶은 실제로 어떤 모습인가?” 주인공들은 부조리, 소외와 외로움, 외모와 현실, 죽음, 삶의 의미, 자아 찾기 등의 실존 문제를 독자에게 드러냄으로써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의 고도는 누구인가

우리는 기다림이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발전과 기술의 진화는 잠깐의 기다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물질적 풍요, 목표, 성과,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지향하는 성과사회는 더욱 그렇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며 경쟁에서 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생각과 속도의 균형이 깨어지면 자꾸만 탈이 생긴다.

쇼펜하우어는 현재의 고뇌가 하나의 자리를 채우고 있고, 그러한 고뇌가 없으면 배제된 다른 고뇌가 즉시 그 자리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애착 물건인 모자와 신발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다. 한 번 떨어트릴 뿐이다. 포조가 채찍으로 땅을 내리칠 때다.

주인공들은 기다림이 실패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다시 시작한다. 오히려 실패하기 위해 다시 시작한다. 고도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고도를 만나고 나서야 끝이 난다. 기다림은 곧 유예, 기회이다.

나의 고도는 누구인가. 나는 이 기다림의 기회를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 기다림이 의미 있으려면, 무언가를 믿고 있는 자기 신념이 중요하다. 신념이 자신을 완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의 나를 기다린다.

<사진 다운링크: https://nystagereview.com/2018/11/04/waiting-for-godot-samuel-becketts-masterpiece-masterfully-hand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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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는…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現)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 &인지기호 LAB 연구원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realroji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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