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유혹과 오디세이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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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유혹과 오디세이의 여정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3.05.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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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2 | 문화기호읽기 3
노진화 박사(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천병희 옮김)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이 이야기다. ‘오디세이는 경험이 가득한 긴 여정이라는 뜻이다. 그는 바다 위를 표류하며 퀴클롭스, 아이올로스, 라이스트뤼고네스족, 키르케, 세이렌, 스퀼라와 카륍디스 등 다양한 위험에 처한다. 신탁을 받기 위해 저승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포세이돈은 매번 성난 파도로 귀향을 막았고, 요정들은 감언이설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듣기 위해 트로이 영웅 네스트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을 찾아갔다.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아내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등쌀에 실을 짰다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오디세이는 근심했다. “아아, 괴롭구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슬프도다. 나는 죽음의 포로가 될 운명인가 보구나!” 전우들을 모두 잃었고, 고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올림푸스 신들은 그의 귀향을 논의했다. 아테나는 오디세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우스는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헤르메스에게 명령했다. “신들의 확고한 결정을 요정에게 알리거라! 귀향은 하되 뗏목을 타고 고생을 하다가 고향 땅에 닿도록 정해져 있느니라.”

오디세이가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궁전은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재산을 축내고 있었다. 텔레마코스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거지로 변장한 그는 활쏘기에 승리하고 아들 텔레마코스와 구혼자들을 처단한다. 파렴치한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카르타고의 오디세이, BC 2c,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

신과 함께하는 인간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일리아드>에서는 변덕스러운 신들이 두 진영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하고, 인간의 사기를 높여 운명을 결정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신은 우주를 창조한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고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뒷세이아>에서 신들은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여겼다. “인간들은 걸핏하면 신들을 탓하곤 하지요. 그 재앙이 우리에게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의 못된 짓으로 정해진 몫 이상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오.”

오디세이와 트로이 전쟁을 함께한 전우들은 자신의 불행을 신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오디세이는 달랐다. 그는 신과 인간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두 개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여 분리될 수 없는 연합의 관계, 불가분의 관계로 생각했다.

그는 불완전한 존재였지만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지략가로서 성숙해져 갔다. 주어진 미션을 담담히 해내며 때로는 자연과 운명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저항하기도 한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그의 탁월한 자질과 영리함을 높이 평가하고 이타카의 무례한 구혼자들을 보복하도록 도왔다. 오디세이는 그 보답으로 제사를 지내며 충성과 경건을 표했다.

 

너의 이름은

그리스인들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며, 부모는 누구이며, 어디서 바닷길을 항해해 왔는가?”

이들의 질문은 몇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배경과 출신지를 이해함으로써 신뢰와 친밀감을 형성했다. 둘째, 여행자의 신분이나 숨은 의도를 파악했다. 셋째, 폴리스 간 서로 군사적 연합과 동맹이 가능했다. 진실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오디세이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고향 이타카에는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야만 트로이에서 승리한 영웅의 여정을 완성할 뿐 아니라 왕의 지위와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는 계속되는 신들의 분노와 바다 위험 속에서 자신의 이름조차도 숨겨야만 했다. 키클롭스인 폴리페모스를 만났을 때 자신을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항구를 떠나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를 극진히 대접했던 알키노오스왕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 알키노오스왕이 낯선 사람에게 환대를 하고 가인이 자기 영웅담을 노래를 불렀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불운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그 오디세이요다시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이타카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마침내 구혼자들에게 승리했을 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여기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오디세우스의 트로이의 영웅이었다가, 방랑자였다가, 다시 오디세이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그가 정체성을 드러낸 것은 스스로 권위를 회복하고 정당한 위치를 선포하는 행위였다.

 

유혹에 맞서는 자세

오디세이는 귀향길에서 많은 유혹을 만났다. 키르케는 1, 칼립소는 7년 동안 오디세이를 붙잡아 두었다.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줄게요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큰 소망이었던 불멸을 거부했다.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의 몸을 돛대에 묶어 유혹에 맞서면서도 노래를 들었다.

인생은 매 순간 외부로부터, 내부로부터,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유혹 그 자체다. 고난 가운데 유혹은 만족스러운 성취의 환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환상은 수명이 짧다. 지속적인 만족이나 진정한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하고 끝없는 갈망과 불만의 순환에 갇히게 한다. 유혹에 빠지면 멀리 볼 수 있는 눈이 사라진다.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너무 멀리 갔다.

오디세이가 유혹을 이긴 이유는 이타카에 돌아가야 한다는 궁극적인 목표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여정은 불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여정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을 생명을 부여한다. 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가? 나는 고난과 유혹에 맞설 삶의 목표가 있는가?

우리는 오늘의 시련이 신의 뜻인지,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은 도전하는 힘을 준다.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젊다. 오늘에 유혹되지 말자. 낯선 사람들에게 당당히 내 영웅담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이타카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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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는…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세계문화기호연구원 원장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인지기호 LAB 연구원

상지대학교 경영학과 강사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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