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하는 약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 숨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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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는 약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 숨어있습니다
  • 오명철 기자
  • 승인 2023.09.06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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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이야기 / 노르만 보이어(Normand Voyer)
노르만 보이어(Normand Voyer)

천연 물질을 연구하는 화학자로서 저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경이로운 화학 물질에서 늘 영감을 얻습니다. 특히, 그 화학 물질이 아주 추운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더 그렇죠.

화학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지도를 하나 보여드릴게요. ‘캐나다 북부라고 하면 보통 북위 55도 위쪽을 의미하는데, 이 지역은 누나빅과 누나부트 지역 대부분을 포함합니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죠. 이곳엔 북극곰도 있고 오로라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상징들에도 불구하고 흰 눈으로 뒤덮인 북부지방은 대부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분자 수준에서는 정말 그렇죠. 저와 저희 팀이 추측하기로 북쪽 생태계는 틀림없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환상적인 화학 물질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왜냐고요? 그곳은 주변 환경이 매우 척박해서 식물과 곰팡이, 그리고 다른 생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거기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화학 물질을 만들어내야만 하니까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한 달 동안 매일같이 하루에 스무 시간 넘게 일광욕을 해야만 한다면 어떨까요?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성능이 아주 좋은 자외선 차단제가 필요하겠죠. 북쪽 생태계의 이끼들이 바로 이런 걸 갖고 있는 겁니다.

북극 천연 이끼 추출물이 아프리카 말라리아 치료

몇 년 전, 저와 저희 팀은 이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누나빅의 움루야크 마을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은 허드슨 만 연안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역에 큰 흥미를 갖고 회색빛이 도는 이끼 한 종을 채집하고 관찰했습니다. 매우 희귀해서 거의 연구되지 않은 구름나무지의라는 이끼입니다. 이 이끼 종은 기후 조건이 매우 척박한 생태계에서만 발견됩니다. 이 종의 화학 구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 종은 누나빅 지역 곳곳에서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100g 정도 채집해서 퀘벡의 라발대학 실험실로 가져왔죠. 이것을 잘 세척하고 잘게 분쇄했어요. 액체 질소를 이용해 만든 섭씨 영하 190도 온도에서요. 이 과정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이끼 세포가 천연 물질을 방출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이 표본을 펄프 형태로 변형시켰습니다. 서로 다른 용매에 녹여서 변형하는데 이 과정을 온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표본을 여과하고 용매를 증발시켜서 마침내 소위 천연 이끼 추출물이라고 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세심한 크로마토그래피 분리 기술과 그 외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이용해 수년간 작업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사상 최초로 구름나무지의에서 13가지의 천연 물질을 성공적으로 분리, 정제하고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13가지 물질 중 11가지는 다른 이끼에서 이미 발견되었던 물질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가지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었습니다. 잠깐 생각해 보세요. 전 세계에 알려진 천연 화학 물질이 자그마치 34만 종류가 넘는데 누나빅에서 채집한 구름나무지의라는 단 한 종의 이끼가 그중 두 가지 물질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북쪽 생태계의 척박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겪은 생명체가 독특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겁니다.

이 화학물질의 성질은 어떨까요? 사실 아직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이것이 다음 세대에 소염제나 항암제, 혹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유용하게 쓰일지 누가 알겠어요?

이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봅시다. 누나부트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배핀섬에서 캐나다의 한 미생물 연구팀이 전에 없던 새로운 발견을 합니다. 아름답고도 냉랭한 프로비셔 만에서 침전물을 채집해 관찰하다가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작은 곰팡이를 찾아낸 거죠. 분류상 모르티에렐라속에 해당하는 균류입니다.

그런데 이 괴상해 보이는 곰팡이가 굉장히 독특한 물질을 합성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됐어요. ‘모르티아미드라는 물질이죠. 이 이상하게 생긴 곰팡이가 왜 이런 천연 물질을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게 우리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래서 과거의 연구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우리는 모르티아미드와 유사점이 많은 어떤 천연 물질들이 아프리카의 열대식물인 자트로파에서 분리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말라리아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말라리아의 주 원인이 되는 기생충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후 변화로 잠재적 천연 치료제 사라지고 있어

그렇다면 모르티아미드에도 이런 효능이 있는 걸까요? 이걸 알아내려고 우리는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연구했죠. 합성한 물질들 중 하나인 모르티아미드 D라는 물질이 말라리아 기생충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놀랍게도 이것이 현재 쓰이는 수많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퇴치할 수 없었던 기생충 균주까지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곰팡이가 만들어낸 이 천연 물질이, 흰 눈으로 뒤덮인 북쪽 지방에 있는 찬바람 쌩쌩 부는 프로비셜 연안의 토양에서 온 이 작은 곰팡이가, 열대지방의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을 치료할 해답을 가져다 준 겁니다.

이제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할 차례입니다. 불행하게도 북쪽 지역은 지금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로 인해 북쪽 생태계에 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나빅의 경우엔 정말 심각합니다.

수지자작나무라는 관목이 있는데 이것이 북쪽 지방에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 관목으로 인해 하등 식물과 이끼가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게 있어요. 이것은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쳐서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방식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화학적 다양성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제가 정말 걱정되는 것은 식물, 이끼, 그리고 곰팡이가 사라지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경이로운 천연 물질들과 잠재적 치료제들도 다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이죠.

이제 우리가 나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흰 눈으로 뒤덮인 북쪽 지역을 보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충분합니다. 제가 할 일은 북쪽 지방에 숨겨진 보물 같은 분자들을 계속 찾아내서 이해 당사자들과 정치가들이 참신한 논쟁을 하도록 돕는 겁니다. 근거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서 더 강력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강화되면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을 것입니다.

내용 및 사진 출처 / www.ted.com

정리 / 오명철 기자 mcoh98@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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