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 이후 계속된 외환위기,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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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 이후 계속된 외환위기, 금융위기
  • 이상미 기자
  • 승인 2023.10.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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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시대별 채용시장_1990s~2000s

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된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고 있던 경제 호황이 정점을 찍었던 황금기이자, 동시에 1997년 외환 위기로 최악의 경제적 시련을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정보화가 진전되고 첨단 전자산업의 비중이 확대된 시기로 정보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0년대는 20세기의 마지막 연대이자 21세기의 첫 번째 연대로, 전 세계적으론 자본주의 3.0’의 황혼과 쇠퇴기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IT버블 붕괴로 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1990s | 경제 적신호, 취업문은 점점 바늘구멍

현재 우리 시대 모습의 원형은 1990년대에 있다. 1990년대는 본격적인 개방화·민주화·디지털화를 통한 선진국 사회로 진입하는 시대였다. 정보통신기술이 전 산업에 걸쳐 인프라 역할을 한 가운데 반도체, 전자, 기계, 자동차, 철강, 조선 등이 한국경제의 중심산업으로 부상했다.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IT혁명은 직업환경에도 큰 변화를 몰고왔다. 정보통신 관련직군이 다양하게 표출된 가운데 반도체, 금융권, 미디어 등의 산업에서 다수의 전문직종이 출현했다. 컴퓨터 산업의 성장은 우리나라에서 웹디자이너, 게임디자이너, 게임 홍보 전문가의 위상을 높였다.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등장은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고성능 컴퓨터 등 여러 통신기기들을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뮤직비디오 문화 등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시대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였다. 1992년도에 서태지의 등장으로 음악이 아닌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세일즈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제작시장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서태지의 영향을 받은, H.O.T를 필두로 한 1세대 아이돌 음악의 홍수가 시작되면서 중·고등학생들이 가수판에 뛰어들고 음반기획가, 가수 등의 직업의 인기도 수직 상승하였다. 사회문화적으로 이 시기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특히 이때 등장한 X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대중 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음반시장도 세계 상위권에 들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은 경제 호황기를 타고 국내 패션 브랜드가 최전성기를 누린 시기이도 하다. 당시 화장품 산업도 성장하며 향장 수출 전문가, 자원문제 전문가의 수요도 증가했다. 학력고사는 1994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행으로 폐지되었다. 그 이후로 음악, 미술, 체육, 기술/가정 등이 입시 과목에서 제외되었다.

 

외향적 성향에게 유리한 면접전형

1990년대는 급변하는 국내외 산업환경으로 인해 취업문화가 전환기를 맞는 시대이기도 했다. 1991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입국이 허용되며 매년 수십만 명의 외노자들이 들어오고 불법체류자들도 대량 양산되는 계기가 되어 국내노동자들의 임금 하향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블루라운드, IMF 사태 등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으로 인해 공채문화의 초점이 기업들의 새로운 인재상정립 쪽으로 모아졌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다 보니 소수 수시채용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필기시험이 폐지되고 공채 전형은 서류와 면접만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자소서의 중요도도 높아져 맞춤법은 물론 문장의 유려함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성장과정’, ‘성격’, ‘학교생활’, ‘지원동기등 항목이 등장했다. 또한 컴퓨터가 대중화된 1990년대 후반에는 이메일 접수방식도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인재모집을 위한 광고는 혁신적 기업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블루라운드 체결과 IMF 사태로 1990년대 한국의 노동시장은 고임금사회와 국제경쟁력 약화’, ‘노동시장 위축과 대량 실업사태’, ‘직업세계 재편과 평생직업시대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IMF체제 이후 신채용기법을 삼성이 도입하면서 채용제도에 전격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1994년에 일제히 도입한 신채용기법은 기존 채용제도를 대폭 수정시킨 시스템인 만큼 채용패턴과 채용형태 등에 있어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소수 수시채용’, ‘특이형 인재선호’, ‘낚시형 채용방식’, ‘인턴사원제 활성화로 채용패턴이 변화되었고, 삼성에서는 SSAT, 집단토론, PT면접, 임원면접의 채용제도가 생겨났으며, 필기면접만 시행하던 현대에서는 서류, 면접 제도가 생겨났다. LGLG종합적성검사(FAST) 제도가 추가되었고, SK 또한 SK종합적성검사 및 어학테스트가 추가되었다. 정형화된 필기시험 형태가 사라지고 각 기업의 인재상과 조직문화에 맞는 새로운 평가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1990년대 공채문화의 구성요소 특성

면접도 기업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대였던 만큼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선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긴장감을 주는 면접, 기존의 딱딱한 면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면접이 트렌드로 잡히며 무자료면접, 카드면접, 술자리면접, 노래방면접, 다차원면접 등 다양한 형태가 생겨났다.

또한 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선택코스가 있어 구직자들은 디스코 경연대회, 배구·족구시험, 코로 풍선 불기, 줄넘기 등 장기자랑 시험을 보았다. 이에 면접자들은 면접관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 면접 모습

IMF 이후 공무원 다시 인기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며 1996년부터 취업의 문은 점점 바늘구멍이 되었다. 1980년대의 그물형 채용방식은 1995년의 블루라운드(Blue Round) 출범과 1997년의 IMF 사태를 맞아 사원공채 패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경기침체와 함께 시작된 기업조직의 슬림화로 인해 대졸 취업난이 가속화되고 동시에 대졸인력이 과잉 배출되는 현상이 되며 고학력 노동시장에 수급불균형이 심각해졌다.

 

IMF 경제위기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 전반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며 비정규직이 보편화되고 개인이 무장해야 하는 사회’, ‘위기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가 됐다. 1994~1995년의 주요 대기업 공채 경쟁률은 10:1을 기록했으며, 여성 취준생들은 취업이 더 힘들었다. 기업의 여성 신입사원 비율은 8.1%에 불과했다.

 

입사지원서를 받기 위해 긴 시간 줄을 서는 광경도 생겨났다. 취업난에 결국 휴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다수였다. 경제위기 이후 면접은 더 치열해지고 입사지원자의 체력과 인성을 꼼꼼히 따지게 되었으며, 인터넷 보급화로 채팅을 통해 면접을 진행하거나 온라인 면접을 진행하는 회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의 과외 금지령이 무색하게 된 1990년대는 몰래 하는 과외가 등장했고, 1995년에는 호주와 캐나다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생겨나며 해외로 나가 일을 하는 워킹 홀리데이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1997IMF 이후로는 공무원의 인기가 다시 상승하고 교사, 공사 직원 등의 직업도 인기가 높아졌다. 또한 인터넷이 발달하며 구인광고를 찾는 것은 더욱 쉬워졌다. 기업체 경비 알바, 페인트 칠 알바 등 이색 알바가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0년대 직장인들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업무상 수작업이 많이 줄어들었다. 삐삐가 보급된 이후 언제 울릴지 모르는 회사의 호출에 대기해야 했다.

 

출근길은 1990년대에도 현재와 동일하게 지옥철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열차 수는 직장인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 자주 연착되는 불편함과 안정상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일본 전철에 존재하는 푸시맨이 우리나라 또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있었다. 이후 5, 6, 7, 8호선이 개통되며 푸시맨커트맨으로 변화된다. 1990년대의 유명한 출근길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19909, 출근길 사진도 있다. 도로가 잠겨 물이 지붕까지 차올라도 폭우를 뚫고 출근을 강행하는 시절이었다.

 

1990년대 폭우 속 직장인의 출근 모습 보도기사(KBS)

 

1990년대 폭우 속 직장인의 출근 모습(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2010년대 들어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시리즈’, ‘국가부도의 날’, ‘모가디슈’, ‘범죄와의 전쟁’, ‘재벌집 막내아들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물이 많이 제작되었다.

 

2000s | 역량면접, 스펙의 등장!

우리나라는 IMF 사태 이후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인 20018월에는 IMF 금융위기를 빠르게 졸업하여 이듬해 1만 달러선을 다시 회복하고, 이후 20072만 달러선을 돌파했다.

 

2000년대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2002년에는 온 국민이 열광했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다. 효순이·미선이 장갑차 사망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사망 사건 등 국내엔 울고 웃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또한 디지털화로 지식기반 산업이 떠올랐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시장도 크게 위축되었다.

 

모든 대기업들은 인적성 검사와 더불어 직무지식 평가로 집약되는 역량면접 형태로 돌아섰다. 취업시장에서 스펙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2000년대 필기전형은 한층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가치를 이해하면서 지원직무와 관련된 능력과 적합도를 동시에 평가하는 고도의 인적성 검사가 보편화되었고, 외국어 점수와 학점이 높아도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하는 지원자가 적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영화계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등의 명작들이 탄생했으며, 게임계는 넥슨’, ‘엔씨’, ‘넷마블’, ‘한게임, 음악계는 JYP, YG, SM엔터테이먼트 같은 대형 대중문화 기업들도 생겨났다. 디지털화의 성장으로 기존 음반시장이 쇠퇴하며 대신 mp3 등 디지털 음악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아이돌 전성시대가 시작되었고, 2000년대 초반엔 여자 솔로 가수들이 전성기였다.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야인시대, 파리의 연인,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풀하우스, 내 이름은 김삼순, 거침없이 하이킥, 커피프린스 1호점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하며,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직업의 세분화와 전문화

2000년대는 선진국 진입으로 그동안 취업문화를 주도해왔던 공채문화가 약화되는 대신, 진로문화와 직업문화가 부상하는 양상을 보였다. 산업환경은 디지털경제화로 집약할 수 있다. 지식기반산업이 한국경제를 주도하는 가운데 반도체, LCD, 정보통신, 휴대폰, 자동차 산업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취업환경과 노동환경은 여전히 취약했다. 인터넷이 발달하자 이메일 업무가 늘고,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많아졌다.

 

2000년대는 직업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전문자격증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결혼 상대를 대신 찾아주는 커플매니저 직업도 생겨나고, 전문화된 직종들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사, 한의사, 인테리어디자이너, 생명공학연구원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직업들이 부상했다.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공인회계사도 인기 직종 대열에 올라섰다.

 

실제로 2001년 경희대 취업정보실이 대학생 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유망한 자격증으로 공인회계사가 선정되었다. 2006년 취업 월간지인 커리어매거진 조사에 의하면, 유망직업으로 한의사가 뽑혔다. 이어 생명과학연구원’, ‘컴퓨터보안전문가’, ‘물류관리전문가’, ‘상담전문가’, ‘광고·홍보 전문가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한의사는 임금수준, 안정성, 전문성, 근무환경 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억대 연봉을 올리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컴퓨터 그래픽디자이너의 성장은 영상 산업의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1인 가구의 증가로 애완견 의상디자이너, 노인복지정책 전문가, 트렌드 컨설턴트 등의 인기도 높아진다.

 

시대별 인기직업 비교

2000년대부터는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카페, 영화관 등에서 일을 하면 취업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고, 대기업의 여러 복지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개인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근로장학생 아르바이트도 인기가 좋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 알바로 손꼽혔다.

1980년대부터 비중이 높아진 면접전형2000년대 입사자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인크루트와 리서치 전문기관 엠브레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면접전형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는 응답이 45.2%를 차지했으며 서류전형’(39.1%), ‘필기전형’(13.0%)이 뒤를 이었다.

1970년대 20여 차례에 그쳤던 입사지원 횟수가 2000년대에는 200여 차례 이상 입사지원을 해봤다는 응답자도 나왔다. 그리고 당시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며 중국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은 입사시험 시 한자시험을 보는 곳들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들의 승진에도 한자 시험 성적이 반영되었다. 한자 열풍이 불며 한자능력검정시험 응시자가 2001559천명에 불과했지만 20025월 무려 31만 명으로 늘어났다.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많아지며 잡지에는 유학관련 특집기사들을 내기도 했다. 특히, 중국시장이 각광받으며 요리, 패션, 영화 등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중국의 전문학교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 유학 관련 잡지 기사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

2000년대 평생직장시대가 사라지고 평생직업개념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으며, 2002년 삼성전자는 신면접제도를 도입하여 기존 인성 및 적성평가 위주의 면접에서 탈피하여 임원면접, PT면접, 집단토론면접을 진행하였다. 2008년 이후엔 글로벌 마인드를 중시하며 영어구사 능력, 국제화 마인드, 비즈니스 스킬, 직무능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였다.

 

1990년대 개성과 끼를 갖춘 인재, 창조적인 두뇌형 인재가 인재상이었다면, 2000년대는 분석적·전략적·혁신적이며 글로벌 사고를 하는 전략가적 인재로 인재상이 변화되었다. 채용제도에 있어 가장 특이한 것은 대학별 채용설명회와 캠퍼스리크루팅이다. 우수인재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 기법으로 1990년대 성행한 채용박람회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인턴사원 제도도 증가하였다. 30대 그룹사 가운데 50% 정도가 인턴사원 제도로 신규인력을 충원했다. 또한 2000년대에 접어들며 건강하게 잘 살자는 이른바 웰빙 문화의 확산 속에 요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학교 수업 과목으로 요가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사라진 직업으로는 극장 간판 그리는 사람이 있다. 작가 5~6명이 분업하여 직접 손간판을 그리던 직업은 2000년대부터 실사출력 간판으로 대체되었으며, 2005박태규 작가를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직장인들의 가장 큰 이슈는 주 5일제 시행이었다. 2001년부터 정부에서 논의되던 주 5일제는 IMF로부터 경제관리를 받고 있었던 시기인지라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20024, 정부의 행정기관이 시범적으로 실시하며 20057월 정부와 공기업이 공식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2005326일부터 시행되었으며, 군대에서는 동년 72일부터 시행되었다.

/ 이상미 기자 job@hkrecruit.co.kr

이윤경 인턴기자 dbsrud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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