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라는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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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라는 낙인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3.10.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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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2 | 문화기호읽기 8
노진화 박사(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나다니엘 호손 <주홍글씨, 1850>17세기 청교도인들을 중심으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아기()와 함께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큰 소리로 그녀를 비난했다. “당신과 함께 죄를 범했고, 그리고 함께 괴로워하고 있을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시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가슴에 ‘A’ 배지를 달아야만 했다. A는 영어 ‘Adultery(간통)’의 머리글자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아이()의 아빠는 아서 딤스데일이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사였지만 헤스터 프린과 달리 자신의 죄를 숨겼다. 그는 신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으며,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7년만에 헤스터 프린은 숲속에서 딤스데일과 재회한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도망을 결심한다. 그러나 딤스네일은 도망가는 대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로 한다. “나를 사랑한 뉴잉글랜드 사람들이여세상의 한 죄인인 나를그는 기력이 다해 죽고 만다.

헤스터 프린은 남편 로오쟈 치링와스가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러나 멀리 타국에서 돌아와 자신이 모욕당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치링와스는 딤스데일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복수할 때마다 그는 기뻐했다.

[그림] The Scarlet Letter, 1926, Director Victor Sjöström

금기

17세기 청교도인들은 공동체를 위해 성욕, 도박, 음주 등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했다. 금기를 어기면 신에게 징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여, 누군가가 금기를 깨면 공동체에 동일한 욕망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 행위에 더욱 분노했다.

최초의 금기는 선악과였다.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수치심으로 몸을 가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죄의 결과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더 큰 욕망과 수치심, 고통이었다. 금기는 호기심과 욕망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금기를 위반하거나 파기하는 순간 고뇌와 동시에 금기를 의식하게 되고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사랑했다. 가죽옷을 입혀 주고 땅을 갈아 소산을 얻게 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헤스터와 딤스네일도 금기를 깼다.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 욕망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두 죄인은 평생 속죄하며 살아야 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귀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딸 펄이었다. 헤스터는 펄 때문에라도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극복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소설에서는 용서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간통(Adultery)은 천사(Angel)와 유능함(Able)으로 의미가 변해갔다.

 

죄의 대물림

펄은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천진난만했으며,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례를 받은 또래와 어울려 놀 수 없었다. “주홍글씨가 뭐야?” 펄은 자신도 어른이 되면 주홍글씨가 저절로 가슴에 와서 달린다고 생각했다. 펄은 동네 아이들이 자신을 놀릴 때면 더 강하고 독하게 굴었다. 펄의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펄에게 양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헤스터가 말했다. “하나님이 저로부터 다른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 대신에 이 아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이 아이만은 죽어도 못 내놓겠어요.” 딤스데일 목사도 헤스터를 대변했다. “아이가 의로운 길로 가게 하는암혹한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어린아이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펄은 부모의 범죄로 인해 사회적으로 차별받았고, 자신의 운명이 엄마의 행동에 의해 미리 결정되는 삶을 살았다. 부모의 죄는 펄의 삶을 제한했다. 펄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것은 유전된 죄책감이었다. 이는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중요시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부당한 것이었다.

헤스터는 딤스데일과 치링와스가 죽고 난 이후, 마을을 떠났다가 얼마 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았다. 펄에게 대물림 되는 죄를 끊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낙인(Stigma)은 불명예의 표시 또는 사회나 집단이 어떤 것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불공평한 믿음의 집합이다. 물리적인 낙인보다 보이지 않는 낙인이 더 무섭다. 한 개인을 평생의 고립으로 몰아가는 것은 조용한 속삭임과 부당한 가정이다. 말 없는 배제, 무언의 판단, 곁눈질 등의 보이지 않는 무게는 개인을 존재의 한계에 가둔다.

오늘날 낙인은 범주가 더 넓어졌다. 대중문화는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욕망을 자극한다. 가짜뉴스를 통해 혐오의 대상이 재생산되고, 부정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은 대상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잘못한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게 공격한다. 복수가 정답이라고 가르친다. 생채기를 내면서 기뻐한다. 마을 사람들도 헤스터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경건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 7:1-2)’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용서받을 기회는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용서는 과거에 대한 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라는 단어를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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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는…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세계문화기호연구원 원장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인지기호 LAB 연구원

상지대학교 경영학과 강사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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