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가 하려는 게 맞아, 하고 싶은 거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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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하려는 게 맞아, 하고 싶은 거 다 해”
  • 한경 리크루트
  • 승인 2023.11.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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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생각의 연장이며 다양한 매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예술가 우윤제는 ‘각기 다른 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면면’을 끌어모아 노래한다. 수없이 흔들리는 예술가 동료들에게 ‘지금 니가 하려는 게 맞아’라며 굳건한 지지를 보내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왔을까. 그가 겪어 온 이야기, 음악으로 펼쳐가는 세계를 엿본다.
우윤제 성악가&문화공간운영자
우윤제 성악가&문화공간운영자

파블로 피카소는 “태양을 노란색 점으로 바꾸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노란색 점을 태양으로 바꾸는 화가도 있다”고 말했다. 음악인 우윤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과거 참여했던 작업의 대본 속에서 발견했어요. 대본 상 맥락은 ‘실력에 대한 증명’이었지만 저는 ‘가능성의 발견과 실현’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해서 마음에 품게 됐어요. 노란색 점으로만 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면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죠. 지금 제가 있는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 딱 그랬어요. 허름하게 망가진 합주실이었는데, 가능성이 보였어요. 진짜 후다닥 계약서 쓰고, 제가 그리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쓸고 닦고, 페인트칠하고, 거울 붙이고, 악기 들이면서 지금의 온소울서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했던 삶 무너져
‘서른 쯤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드나드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하고 있을 때, 오히려 음악에 대한 초심을 기억하게 된 덕분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드럭스토어부터 호프집, 카페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당시 다른 일을 했던 이유는 ‘음악’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유학이냐 한국이냐 선택의 갈래에 섰죠. ‘서양 전통음악을 전공한 한국인’이라는 경계와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마음이 어려웠어요.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풀어야겠다 생각이 들어 한국에 남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제 나는 음악과 관련한 일로만 돈을 벌겠다’고 결심했죠. 작은 연주들도 출연하고 어린이 합창단 지도부터 중년여성 합창단 지도, 피아노 학원 근무, 피아노 반주도 다니면서 음악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경제활동을 이어왔어요. 1년 정도 그 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니까 결심한대로 삶을 일궈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어요. 그때 딱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거죠.”
비말로 전파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속성 때문에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연주 활동부터 성악 레슨까지 모든 경제적 활동이 타의로 인해 중단됐다.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오랜 시간 버티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제 안의 확신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열심히 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고, 아예 기회가 전혀 주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제 의지만 가지고는 도저히, 무엇도 할 수가 없어서 꽤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혀 울며 시간을 보냈어요.”
좌절에 빠져있던 그는, 문득 좋아하는 걸 못할 뿐이지 먹고 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것이 다시 음악으로 향하기 위한 여정이 될지,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될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삶을 꿈꿨는데, 당시에는 그걸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만둬 버리면 내내 마음에 남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마추어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루나틱이라는 작품의 ‘굿닥터’ 역을 맡게 됐습니다.”
뮤지컬 루나틱은 정신병동에 오는 환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는 내용이다.
“당시 극에 쓰이는 곡들이 저를 위로하는 것 같았어요. 무대에 서는 그 순간 제가 음악을 진짜 사랑한다는 걸 느꼈어요. ‘이젠 그 어떤 음도 듣기 싫다’ 는 증오의 감정인 줄 알았는데, 사실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이더라고요. 그때 어떻게든 음악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을 다시 만들어보자고 다시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어떻게 하면 음악 가까이에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오래 전부터 막연히 그려온 꿈이 떠올랐다.


“내 공간, 오롯이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망이 있었어요. 그 불씨에 불이 지펴졌고, 부동산을 미친듯이 보러다니기 시작했어요. 서울 안에 연습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들은 다 둘러본 것 같아요. 운명처럼 지금 이 곳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왕십리역에서 도보로 1분도 안 되는 곳이 매물로 나와 있었거든요. 코로나 상황으로 문을 닫게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합주실이었어요. 당시 코로나로 집합금지가 걸려있는 상황이라 저도 솔직히 불안했지만, ‘월세 절반 낼 만큼만 벌어도 성공이다’는 마음으로 덜컥 계약했어요. 지금은 그때가 위기 속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온소울서울 로비
온소울서울 로비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는 공간, 온소울서울
온소울서울의 ‘소울’을 한자로 풀이하면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치다’라는 의미이며, 영어로는 OWN SOUL로 표기해 ‘고유한 나의 영혼을 찾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았다. 처음에는 이 공간을 예약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가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노래 연습을 하는 사람, 합주 연습을 하는 사람들, 따뜻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픈 수많은 이들이 온소울서울에 다녀갔다.
“온소울서울은 바쁜 도심 속에서 온전히 ‘나’일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왕십리점은 ‘음악’을 통해, 서촌점은 ‘여행’을 통해 바쁜 서울 일상 속 나만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는 거죠. 인생은 나를 찾는 여행이라고 하잖아요. 저 역시도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어요. 그 일환으로 이 곳에 방문한 아티스트분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나’의 이야기를 담은 <Your Song>이라는 이름의 방구석 콘서트를 열기도 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만드는 일에 매달렸던 모든 과정이 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이었을 터. 한편으로는 그가 전공한 영역 안에서 어떤 경험들을 통해 실력을 쌓아왔는지 궁금해졌다. 또 클래식 성악 전공자로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했다.

“2020년 12월 샹송오퍼 <발코니 오페라> 무대가 끝난 날을 잊을 수 없어요. 무대인사를 끝내고 하수로 들어오신 감독님을 포효하듯 소리지르며 안아 들어올렸거든요. 해냈다는 감동이 컸던 것인지 저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어요. 연극, 영화, 연기, 성악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샹송오퍼’라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장르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암흑 속이었어요. 정말 고됐지만, 그 만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시 생계를 위한 레슨 일정과 무대 올리는 일을 병행하느라 눈이 움푹 파일 정도로 피곤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했던 덕분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어요. 그런 분위기를 느끼면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이 나거든요.”
샹송오퍼는 가사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Chanson’이라는 노래 장르와 대표적 극음악 장르인 ‘Opera’의 합성어이다. 클래식 음악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배가시키기 위해 공연적 성격을 가미한, 시도적인 극음악 장르이다.


“샹송오퍼는 아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단계의 장르에요. 대학원에서 저의 담당 교수님이었던 서희정 교수님께서 새롭게 개척하신 장르이고요. 대학원에서 교수님의 제자로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제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이 속된 말로 ‘외래종’이라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문화적, 정서적 차이를 극복하고 대중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거든요. 교수님은 샹송오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그걸 풀어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 한국의 정서에 맞는 대본을 창작하고 그에 맞는 곡들을 콜라주해서 클래식 성악 발성으로 전달하시거든요. 저 역시도 서양 음악을 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어떠한 경계에 서게 될 때가 있어서 늘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덕분에 싱어 우윤제로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좋은 영양분을 많이 받았어요.”

“새롭게 시도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죠”
대학생 우윤제는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프리마돈나를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사람들과 노래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중학교에서 <예술로 자아탐구>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나만의 노래 만들기 활동부터 성악을 전공한 동기들과 <프로젝트 벨라보체>라는 5인조 성악 그룹을 만들어 노래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지금은 노래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큰 무대가 아니어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할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이요. 공간도 두 곳이나 운영하고 있지만, 싱어로서 제 정체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싶어요. 그래서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문화 활동들도 기획해보고 싶고요.”
어떤 노래를 하고 싶은지, 공간에서는 어떤 문화 활동을 해보고 싶은지 물었다. 예술인 우윤제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일까.


“제가 사람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 노래에 삶을 담고 싶어요. 이미 음악은 본질적으로 인간사 희노애락을 담고 있어서, 음악을 통해서 누군가와 연결될 수도 있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낄 수도 있어요. 또, 저에게 ‘클래식’은 서양의 전통음악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에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을 ‘클래식하다’고 표현하잖아요. 저에게 클래식이 그래요. 그래서 클래식 전공자로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를 노래하고 싶어요. 저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와 삶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함께이고 싶어요.”
존재와 연결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흔들리는 청년 예술가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했더니, 꾸밈없는 응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네가 하려는 게 맞아,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창작을 한다는 건 불안함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아요. 저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쉽게 꺼내놓지 못했던 마음들, 활동들이 있었거든요.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그것을 의도대로 정확히 전달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고 겁이 나는 일이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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