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감동과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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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 감동과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곳!
  • 한경 리크루트
  • 승인 2024.01.0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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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스트를 만나다 |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 2023 APA 필란트로피스트 상 수상자

 

‘푸른 산’을 의미하는 ‘푸르메’라는 이름으로 2004년 창립발기인 대회를 거쳐 2005년 설립된 푸르메 재단. 설립 이후 장애인과 가족이 믿을 수 있는 재활병원을 만들어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작년 12월, 푸르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백경학 이사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 어린이와 청년들이 잘 치료받고 성장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는 백경학 이사를 만나본다.

 

1998년 영국에서 교통사고로 아내가 중증 장애인이 되면서 삶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는 백경학 이사. 한국에 와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장애에 대해 눈뜨게 되었고,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청년들이 세상의 구성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조금씩 구체적인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의 치아건강을 위해 민간 장애인 치과를 운영했고, 이후 어린이 재활치료를 위한 의원과 병원으로 확장했죠. 작년에는 푸르메소셜팜을 만들어서 청년 장애인들의 재활과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2016년에 마포구 상암동에 어린이재활병원이 만들어졌다. 당시 1만 명의 시민들이 정기기부, 일시기부를 하고 넥슨을 포함한 500개 기업에서 기금을 모아 총 430억원을 모았다. 우리 나라에 어린이 재활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때는 하루에 500명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았다.

“그 때는 외국에서도 치료를 받으러 왔어요. 당시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이 치료를 잘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24시간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어도 그 생활이 지속되기 때문에 자립이 불가능하더라고요. 장애 어린이나 청년들의 최종 목표는 자립인데, 그게 가능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왕이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서 시작한 것이 푸르메소셜팜입니다. 2022년 9월에 완공했어요.”

경기도 여주 오학동에 위치한 푸르메소셜팜은 3,800평 정도의 규모로 운영 중이다. 현재 20-30대 장애 청년 55명이 4대보험과 최저임금 이상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방울토마토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방울토마토는 SK하이닉스에 납품하고, 표고버섯은 GS마트에 팔고 있습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고, 2시간 정도는 재정관리나 건강관리 등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교육하고 있고요. 사실 처음에는 일하는 친구들이 눈도 잘 안 마주쳤는데 1년이 넘으니까 뛰어와서 인사도 하고 부모님 용돈으로 얼마를 드린다고 자랑도 하고, 회식으로 짜장면이나 떡볶이도 먹는다고 자랑해요. 돈에 대한 개념도 생기고, 무엇보다 돈을 벌면서 자립을 하니까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거죠. 거의 삼성그룹의 임원급입니다(하하)!”

여주에 이런 시설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수많은 기부자들과 기업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가족의 부모가 땅을 기부했고, 인근에 공장이 있는 SK 하이닉스가 50억을 기부하면서 지역사회 상생을 위해 생산 작물 구매도 약속했다.

“일하는 친구들 중 6명은 인근 보육시설에서 생활했었는데, 여주시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출퇴근이 용이하도록 아파트 3채를 얻어줬어요. 사실 이 친구들은 시설에서 나오는 것이 꿈인데 그게 이루어 진거죠. 출근 시간이 9시면 대부분 빨리 와도 8시반에 오잖아요, 근데 소셜팜 직원들은 7시면 이미 와 있어요. 명함을 만들어 주니까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하고 뿌리고 다니더라고요. 스스로 자긍심이 생기는 거지요(하하).”

푸르메소셜팜 내부에는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도 운영 중이다. 토마토와 버섯을 생산하는 농장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 청년들이 바리스타와 제빵사로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일터다. 이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실기시험에서는 저울을 주면서 500g의 방울토마토를 담으라고 했을 때 저울을 사용해서 맞게 담는지 등을 테스트한다. 카페 채용의 경우 커피 내리는 걸 알려줬을 때 숙지하고 그대로 할 수 있는지, 주문을 받고 주문서를 잘 넣을 수 있는지, 사람을 기본적으로 응대할 수 있는지 등을 살핀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와 시스템 중요해

장애인이 행복할 수 있으려면 사실 사회적으로 인프라와 시스템이 정말 중요한데 이 부분은 단기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국은 갑자기 장애가 생기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도 서로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급성기에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면, 병원시설도 부족하고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퇴원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 탄광에서 일하던 분이 사고로 다리를 절단했는데 정기적으로 와서 의족이 맞는지, 좀 더 편하게 조절할 것은 없는지를 의사, 치료사, 의지보조기기사가 함께 의논하면서 치료를 하더라고요. 제도와 지원에 환자가 맞춰야 하는 우리의 상황과는 다른거죠. 유럽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와 같이 장애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데 여전히 우리는 투쟁을 통해서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고요. 사실 이런 시설을 처음 만들면 비용이 적게 드는데, 후에 하면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 장애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인이 나하고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고 장애인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돕고자 하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

“저희 같은 재단에 후원을 할 수도 있고, 시간이 날 때 자원봉사를 해도 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혐오적, 차별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가끔 지하철에서 소리 지르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럴 때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거죠. 건물을 지을 때 턱을 없애고 장애인 화장실을 마련하는 작은 실천들이 전 분야로 확장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경학 이사가 만난 수 많은 아이들 중에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바로 재활센터 초기에 치료를 받던 5살 민이다. 처음에는 목도 가누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했던 아이가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벽을 잡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민이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 민이가 걸어요!’ 하시는 거에요. 그때 전화 내용을 들은 직원들이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만세삼창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애를 조기에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훨씬 나아질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건이었죠.”

 

따듯한 마음, 사명감과 성실성

비영리라고 해서 전공에 제한이 있진 않다. 푸르메재단의 경우, 전체의 반이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나머지 반은 경영학, 신문방송 등 다양한 전공을 하거나 영리회사를 다니다가 좀 더 의미있는 일을 찾아 온 사람들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먼저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하고 사명감과 개인적 성실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성과 기획력도 있다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오히려 영리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비영리에 와서 사업을 좀 더 풍성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의 능력이라는 게 큰 차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실현하냐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푸르메소셜팜이 여주에 있는 하나의 농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퍼져나가서 여러 곳에 생기길 꿈꾼다는 백경학 이사. 각 지자체들이 나서서 농장을 만들고, 그 농장에서 장애인들은 자립과 꿈을 실현하고, 지역주민들은 물품을 사주면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15년 전에 스위스에 갔을 때 시골에 있는 발달장애청년 작업장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취리히 은행에서 엽서나 카드를 주문하면 취리히 대학 디자인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예술적 재능이 있는 장애청년들과 함께 디자인 작업을 하고 그걸 은행에서 구매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장애인 예술인들이 만든 카드이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해서 보통 가격보다 10배의 가격으로 구입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 사회도 이런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후원이 이루어진다면 건강에 취약한 발달장애인들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캠페인을 진행해 보고 싶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잘살게 되서 우리 병원같은 시설을 마련한 것처럼, 가난한 동남아 국가에도 이런 시설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청년 구직자들이 이름있는 직장, 월급 많이 주는 직장을 원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삶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백경학 이사는 단순히 일을 하기보다 감동과 의미를 깊게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길 제안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봤을 때 젊을 때는 어느 기업에 다니는지, 연봉이 얼마인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근데 5년 정도 지나면 자기 적성에 맞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서 가능하면 오래다닐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더라고요. 대기업도 좋지만 우리 재단같은 비영리영역에서 일하다 보면 따뜻한 기부자들을 만나고 실제 변화하는 사례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거든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더 길게 의미를 느끼며 감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계시다면 함께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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