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모두를 위한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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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모두를 위한 ‘군주론’
  • 한경 리크루트
  • 승인 2024.03.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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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3 | 문화기호읽기 1
노진화 박사(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노진화 박사(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콜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사상가, 철학자, 외교관, 작가이다. 그의 저서 <군주론, 1532>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이다.

역사적으로 15세기 이탈리아 국가는 여러 군소로 나뉘어 있었고,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등 강대국들의 개입과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는 보르자 가문 출신 알렉산데르가 교황의 자리에 오르고, 프랑스가 이탈리아로 침입해 왔다. 마키아벨리의 고향이었던 피렌체 공화국도 이러한 외세의 위협에 시달렸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프랑스 샤를 8세는 메디치 가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부적으로도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도미니크 수도사가 메디치 가문의 부패를 비판하고 공화정을 주장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결국 메디치 가문의 추방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며, 다른 나라의 군주들을 만나 피렌체의 새 정권이 직면한 해상 왕래와 외교 현안을 처리했다. 그리고 피렌체에 군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512년 메디치 가문이 스페인 군대를 동원해 피렌체를 다시 점령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정치적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고 쫓겨나고 말았다.

그가 <군주론>을 쓴 배경은 교황청 대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서 서재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읽은 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테가 말했기 때문에, 저는…군주국에 관한 소책차를 썼습니다.”

 

<군주론>에서 그의 롤모델은 모세, 키루스, 카이사르, 한니발,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 등이었다. 이들은 용기와 지혜, 강력한 통치 방법과 법률의 제정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번성하게 했다. 특히,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는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으로 여겼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사신으로 보르자와 두 번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민중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민심을 통제하고, 유능한 참모들을 기용하고 교황의 권력을 활용하는 등 현명한 통치 수완도 발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권력에 의존했던 한계도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보르자의 통치 방식이 현실주의와 실리주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렌초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마키아벨리의 계획과는 달리 메디치 가문은 공화정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Portrait of Niccol o` Machiavelli bySanti di Tito
Portrait of Niccol o` Machiavelli bySanti di Tito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군주론>의 주장은 무엇인가?

그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이며,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위해 첫째, 실리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리주의는 이론이 아닌 실제 결과가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위장과 기만도 동원할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 강력한 리더십이다. 마키아벨리는 두려움이 사랑보다 더 견고한 토대라고 말했다. 국민에게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통치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자는 결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셋째, 변화 수용이다. 변화는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새로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넷째, 신뢰 구축이다. 마키아벨리는 백성의 지지 없이는 아무리 강력한 통치자라도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기에 군주가 백성의 사랑과 신뢰를 얻는 것이 통치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다섯째, 전문가 활용이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판단력만큼이나 조언자들의 조언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그는 군주가 혼자서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없으므로, 유능한 조언자와 전문가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섯째, 시민 중심이다. 모든 국가와 모든 군주국은 두 가지 대상, 하나는 국민 또 하나는 군주를 가지고 있다. 그는 군주가 개인적 사치나 향락에 빠지지 말고, 국가 재정을 알뜰히 운용하여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을 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에는 여러 기호가 응축되어 있다. 강력함, 잔혹함, 통제, 정복 등의 개념이 긍정적 가치로 부여되는 데, 이는 폭력적 지배 권력에 대한 미화이다. 또한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실리주의 관점에서 윤리는 단지 기표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윤리가 활용되고 지배 권력의 신화가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군주론은 지배 계급의 관점에서 강자의 폭력이 미화되고, 실리주의 논리가 도덕을 압도하며, 피지배 계급인 민중은 소외되어 있다. 군주론의 반동적 성격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은 오늘날 많은 대학과 기업에서 리더십 과정의 필독서로 지정하고 있다. 이는 군주론이 현실 정치의 냉혹한 진실을 묘사하며, 성공적인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뷰카시대, 리더들은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관리도 필요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기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신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신뢰를 얻고, 성공적인 통치를 할 것인가? 문제를 알면 답이 보인다. 그러나 모든 답을 알지는 못한다. 마키아벨리가 역사에서 답을 찾고자 했듯이, 독자들도 <군주론>을 통해 알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에 대비해서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역량(비르투)을 길러야 할 것이다. 또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 리더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노진화 박사는...

•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 세계문화기호연구원 원장

•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인지기호 LAB 연구원
• 상지대학교 경영학과 강사

•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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