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 제주 대정들녘에서 만나는 야생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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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 제주 대정들녘에서 만나는 야생 수선화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5.05.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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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CULTURE


제주 대정들녘에서 만나는 야생 수선화


한라산 정상은 만년설처럼 두꺼운 눈 속에 파묻혀 있고 바닷가에 쉼 없이 불어대는 해풍에서는 섬뜩한 한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남제주군 대정읍 일 대의 드넓은 들녘에서는 때 이른 봄기운이 또렷하다. 제주도의 봄을 알리 는 전령사인 수선화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수선화는 대도시의 화원이나 가정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 분 관상용으로 개량된 서양 수선화이다. 애초부터 우리 땅에서 스스로 나 고 자란 야생 수선화를 보려면 남해안의 거문도나 제주도를 찾아가야 한 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때깔은 소박하면서도 꽃향기가 아주 진한 야생 수 선화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야생 수선화가 가장 흔한 곳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9 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남제주군 대정읍의 들녘이다. 수많은 자동차들 이 분주히 오가는 도로변에도 수선화가 있고, 바닷가의 양지바른 언덕에 도 피어 있다. 또한 마을 안의 돌담 밑과 고샅길뿐만 아니라 들녘의 밭둑 과 무덤가에서도 수선화가 피고 진다.

기나긴 유배생활에서 비롯된 절망감과 고독으로 인해 적잖이 힘겨웠을 추 사는 수선화를 매우 어여삐 여겼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추사의 글 가운 데에는 수선화를 예찬하는 내용이 여럿 있다. 그중 권돈인이라는 친구에 게 보낸 편지를 보면,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이다. 중국의 강남 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여기는 방방곡곡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수선화 없는 데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추사는 소담스레 꽃을 피운 수선화를 두고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고 표현하기 도 했다.

그러나 추사와는 달리, 현지 주민들에게 수선화는 별로 달갑지 않은 식물 이었다. 제주도 방언으로 수선화는 ‘ 마농’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해 석하면 ‘말이 먹는 마늘’이지만, 진짜 속뜻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마늘’이라는 뜻이다.

야생 수선화는 번식력이 강해서 한번 밭에 뿌리를 내리면 다른 농작물의 생장을 가로막을 정도로 무성하게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좁고 척박한 밭 에 온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농부들에게 수선화는 눈에 띄는 대로 뽑 아 버려야 할 잡초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제로 대정들녘의 구석구석을 돌 아다니다 보면, 뿌리째 뽑혀서 밭가에 나뒹구는 수선화가 어렵지 않게 발 견된다.

요즘에는 일부러 수선화를 심어 놓은 곳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도로변의 작은 공원이나 유명관광지의 화단, 민가의 정원에 청초하고 단아한 모양 의 야생 수선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드넓은 대정들 녘 중에서도 대정향교와 산방산 사이의 도로변과 밭가, 송악산~사계리 해 안도로변, 대정읍 상모리의 알뜨르비행장터 등지에서 야생 수선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선화가 핀 대정들녘에는 추사적거지, 대정읍성, 대정향교, 알뜨르비행장 터, 일오동굴, 백조일손지묘 등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 적이 많다. 그 가운데 추사적거지는 대정읍 안성리에 자리잡고 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추사 김정희가 졸지에 유배객이 되어 제주도에 당도한 것은 1840년(헌종6) 9월 27일이었다. 당시 집권세력 이었던 안동 김씨 일파가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를 다시 들 춰내서 추사를 중죄인으로 옭아맨 것이다.

처음에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던 추사는 얼마 뒤 강도순의 집으로 옮겼 다. 이곳에서 추사는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진력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 한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제주도에 유배된 지 꼬박 7년 3개월, 해수로는 9년 만인 1848년 12월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현 재 추사적거지에는 당시의 초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추사적거지 옆에는 옛날 대정현의 관아가 자리했던 대정읍성의 일부가 남 아 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에 처음 세워진 석성이 다. 대정읍성의 동문터 밖에는 ‘濟州大靜三義士碑’(제주대정삼의사비)라 는 비석이 있다. 신축년(1901)의 농민항쟁을 이끈 세 지도자, 즉 이재수· 오대현·강우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추사적거지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단산(바굼지오름)의 남쪽 기슭에는 대정 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구조와 기능은 여느 향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변의 풍광과 분위기가 퍽 독특하다. 향교 앞의 드넓은 들녘 너머로는 눈 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형제섬, 송악산 등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의 서남단 바닷가에 우뚝 솟은 송악산(104m)은 가파도와 마라도, 산 방산과 용머리해안, 한라산 정상까지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 난 오름이다. 그리고 송악산 북쪽의 들녘은 일제시대에 오무라 해군항공대 의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들녘 곳곳에는 당시 건립된 비행기격납고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남 아 있다.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에는 일본군이 군수품과 어뢰정을 숨겨두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도 많다. 모두 15개여서 ‘일오동굴’로도 불리는데,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됐던 TV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알려 진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그밖에도 송악산~사계리 해안도 로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 중의 하나 로 손꼽히는 길이다.

[월간 리크루트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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