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취업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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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취업수기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6.06.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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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RECRUITING: 파란만장 취업수기


오늘도 난 내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남짓 된 사회 초년생입니다. 동기들보다 대학 교 졸업도 2년 늦게 했지만 지금은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업무를 익히며 열 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문대에 입학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 를 벌어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방 전문대라 취업률도 저조하고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던 중 군 제대 후 편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대 후 다시 학교생활 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편입 준비와 함께 아르바이트 일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힘이 들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편입을 하려고 하니 영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형편상 통신 강의를 들으면서 틈틈이 준비를 했습니다. 그 결과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남들보다 긴 8년이란 시간 이 걸렸네요. 어려웠지만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 을 다했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사회생활을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기회는 생 각보다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장씩 구입한 이력서였는데 나중에 는 한 권을 구입하게 되더군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각했던 사회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영업직으로 취업하게 됐는데 인맥도 없고 제 정서에는 잘 맞지 않았 습니다. 영업실적이 뛰어난 사람들은 거의 인맥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고 인맥이 끊어지면 퇴직하는 사원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업직 사원 을 자주 채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직할 직장이 마땅치 않아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마침 화학과를 졸업한 선배로부터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방문해 보니 섬유수출회사였고 편입 준비를 위해 공부한 영어 덕분에 합격 할 수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이고 수출길이 막혀 조금은 고전하고 있었지 만 탄탄한 회사였고 무엇보다 전공을 살릴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무역업 무도 병행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무역 업무에는 생소하지만 지금 은 선적서류부터 시작해 많은 것을 배워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가 끔 갖가지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배워왔듯 열심히 사회생활 을 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업무가 끝나면 무역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야 겠다는 생각에 회사에 남아 인터넷을 뒤지며 무역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 다. 생소한 분야라 무척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한 호기심이 생겨 젊음 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은 끈기 덕분인지 아니면 이 어려운 취업난에 그나마 취직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인지 정식 사회생활을 한 지 6개 월밖에 안 되는 직장인이지만 의지가 불끈 쏟아 오릅니다. 아직까지 업무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힘든 점도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겠습 니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기까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신문을 보며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 찾 은 첫 번째 직장은 영어학습지 영업을 하는 일이었지요. 처음 하는 일이 라 뭐든지 배우고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퇴근 후에도 열심히 일 했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관두기는 쉽지 않더군 요. 어느 날 아버지 친구 분께서 소개해주신다는 화장품 회사의 연구실 쪽 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꼭 붙게 해주신다는 말만 믿고 과감히 사표를 냈 는데 전 결국 백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의 말만 믿고 사표를 던지는 것 은 무모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수산화나트륨을 제조하는 회사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처 음으로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을 한 셈이죠. 저는 그곳에 서 유독물 관리사와 식품관리사로 일하면서 사무직까지 병행했지요. 사장 님이 계셨지만 실제 운영은 아들인 젊은 이사님이 맡고 계셨고, 밑으로 부 장님과 과장님 두 분 그리고 경리일을 하시는 대리님과 저를 포함한 여직 원 3명이 한 사무실에서 일을 했지요. 힘들었지만 그나마 대리님이 있어 서 힘을 냈는데 2년 정도 후 그 대리님이 퇴사하신다는 걸 알고 저도 같 이 사표를 내고 말았습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지 않았지만 저 혼자는 다 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책은 없었지만 그만두었지요.

또다시 백수의 생활. 공부를 더 하려고 했지만 여력이 안 되어 급기야 진 로를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기로 마음먹었죠. 그때 나이가 27살이었는데 남들은 시집갈 나이라고는 하지만 전 결혼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터라 자신만의 직업을 갖기 위해 교육 쪽을 파고들었습니다. 화학과를 졸업한 덕분에 바로 취직이 되더군요.

아이들 집에 가서 한 시간씩 그룹으로 과학 실험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실 험하고 관찰한 후 보고서를 쓰는 법을 가르치는 과학교사였습니다. 직접 아이들과 실험하고 체험하는 능동적인 수업이라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시 간이 가면서 아이들과 친분도 두터워지고 부모님들과도 끈끈한 정을 쌓았 습니다.

때마침 방학 때 과학실험 후 보고서를 제출하는 전국대회가 있었습니다. 실험주제도 정해야 하고 보고서도 작성해서 연구하는 것이라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2년의 경력을 믿고 한번 도전을 해보기로 했지요. 아이들 중 3명을 엄선해서 각각 실험 주제와 연구 과정을 정한 후 근 한 달을 실 험했습니다. 3명의 아이들과 과학실험을 각각 진행하고 나머지 아이들에 게 원래대로 수업을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도 경험을 쌓고 아이들에게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데 의의 를 두고 실험을 마쳤는데 세 아이 모두 입상을 했습니다. 금상 2명에 동 상 1명이 당선 되었는데 우리 지사에서는 처음으로 당선된 것이라더군요.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 직업이 제 적성에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 낳기 직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금은 아이를 양육 중이지만 곧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 고 싶답니다.

직장을 구하고 계신 구직자 여러분, 가장 행복한 일은 자신의 적성에 맞 는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꼭 적성에 맞는 일을 찾 기를 바랍니다.

[월간 리크루트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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