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면 불가능한 일이 여럿이 모여 현실이 되었죠!
상태바
혼자라면 불가능한 일이 여럿이 모여 현실이 되었죠!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9.10.28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규 ‘처음처럼후원회’ 회장

여기, 9년 간 묵묵히 보육원 아이들을 후원하고 공부를 가르쳐온 이들이 있다. 올해 2명의 아이들을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시킨 처음처럼후원회가 그 주인공이다. 기자는 이 소식을 접한 후부터 줄곧 궁금했다. 베일에 가려진 이 후원회의 정체가 말이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평범한 사람들의 9년간의 도전, 그 무모한 도전이 현실이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진규 회장을 찾아갔다.

취미생활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작은 모임

우리는 음악, 영화, DVD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났어요. 서로의 취미를 공유했죠. 일종의 직장인 취미모임 같은 거였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나보니 빈민, 노동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그러면 우리가 한 번 보육원 봉사활동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왔고, 모인 사람들의 재능이 다양해서 그렇다면 아이들 공부를 가르쳐주자고 제가 제안했죠.”

그렇게 처음처럼후원회는 관심사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2010년 결성되었다. 규모가 작으면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보육원 한 곳을 정했다. 산 속에 위치한 경기도 소재의 한국보육원에서 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목표는대학 합격’. 한 명의 아이라도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했다. 수능점수는 단기간에 반짝하고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보육원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투자가 필요했다.

가정이 해체된 아이들이 마지노선으로 오는 곳이 바로 보육원이에요. 그런데 가정은 어느 순간 한 번에 해체되는 게 아닙니다. 장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죠.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 그 또래에 받아야 할 부모의 돌봄,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대다수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나 폭력적인 부모를 둔 학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많고요. 그래서 기초교육부터 가르쳐야 했어요.”

공부의 기반부터 다지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와 문화수업부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재능기부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글도 올렸다. 전문직 종사자, 회사원, 공무원,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지원했다. 선생님들의 다양한 재능 덕분에 독서, 미술, 레고, 풍물, 단편영화 등 다채로운 수업이 열렸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는 데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즐겁게 수업을 진행했다.

가장 난해한 시간은 독서수업이었다. 10분 앉아있는 것이 목표였을 정도로 아이들은 책에 집중하는 걸 힘들어 했던 것. 하지만 한 달에 1~2회씩 꾸준히 수업을 열다보니 10분이 20분이 되고 집중하는 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이 성장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매주 1회씩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공부와 성장의 기회를 제시한 후원회 통장

후원회의 소식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재능기부 선생님으로 지원했다. 아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해줄 후원회 통장도 만들었다.

후원회에는 3개의 통장이 있어요.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퇴소해 사회로 나갔을 때 생필품을 구입한다거나 학원을 등록하는 등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개인통장’, 대학교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주는 장학금통장’, 수업교재, 아이들 간식 등 교육봉사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출하는 처음통장을 마련했죠. 후원금 모집도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어요. 후원회의 취지에 공감하고 응원해 주시는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죠. 1년에 평균 40여 분 정도가 후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 중에는 장기 후원자가 제일 많고 가끔 몇 백만 원씩 보내주시는 분도 있어요.”

후원금 모집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500만 원을 받고 퇴소를 하게 된다.(보육원은 지자체 소속이라 지역마다 다르지만 더 적게 주는 곳도 있다) 인맥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아이들은 500만 원으로 집을 구하고 가구도 사야 하는 것이다. 500만 원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의 환경은 현실적으로 매우 열악하고 위험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공장이나 식당 등 열악한 노동 환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가진 생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 먹으려는 나쁜 어른들의 속임에 넘어가기도 한다. 결국 아이들은 시간이 흘러 빈민층이 되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어요. 그래서 퇴소 후에 미용이든 기술이든 뭔가를 배우고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우선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통장을 만든 거예요.”

통장별로 수 천만 원에서 수 백만 원이 모였다. 검증된 사회단체도 아니고 평범한 민간인들이 모인 모임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후원금, 아니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회계담당자를 두어서 후원금의 지출내역과 사용내용을 투명하게 보여줬어요. 회계담당은 대기업에서 회계업무를 하던 회원이 맡아줬습니다. 그리고 후원회 활동을 신뢰할 수 있게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그 성장의 모습이 바로 성적 향상이죠.”

아이들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표는 곧 후원회의 성적표인 셈이다. 물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는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후원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재능기부 선생님, 후원회 구성원, 그리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이름도 생소한 후원회에

후원금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대학교 입학, 그리고 보육원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

국어, 영어, 수학 주요과목 선생님도 재능기부자로 모집했다. 공대 출신 회원이 수학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동시통역사가 영어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주요과목 선생님만 30명 남짓. 모두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수업을 위해 직장 생활 틈틈이 문제집을 풀어보고 수업을 준비해오는 성실한 선

생님들이었다. 아이들도 수업에 열심히 따라왔다.

5년 후에는 신애원이라는 보육원 한 곳을 더 추가했다. 선생님의 인원과 시간은 제한적이고 후원하는 보육원은 두 곳이 되면서 방문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만날 공간이 필요했다. 이 소식을 듣고 우신보석감정원에서 연락이 왔다. 우신보석감정원빌딩의 빈 공간을 내어주겠다고 선뜻 손을 내민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독서문화수업은 그대로 방문수업을 하고 중고등학생 대상 주요과목 수업은 우신보석감정원빌딩 공간에서 진행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직접 찾아와야 하는데 괜찮을까하는 걱정도 많았죠. 아이들에게 수업 공간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도 했죠. 기꺼이 공부하러 오겠다는 아이들의 대답에 힘을 얻었어요.”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두 명의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했다. 명지대와 중앙대에 합격한 것.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때부터 후원회를 통해 계속 공부해온 아이들이다. 후원회 사람들도 놀란 성과였다. 장담할 수 없었던 대학보내기라는 목표가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언니, 오빠가 공부해서 대학교에 합격한 모습을 지켜본 어린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공부를 시켜달라고 조르고, 스스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생긴 것이다.

롤모델이 생긴 거예요. 일종의 파급효과라고 할 수 있죠.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니 정말 놀라운 변화이죠. 얼마 전에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만나서 맥주 한 잔을 했어요.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코흘리개 때부터 봐온 녀석들인데,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니, 정말 감동이었어요.”

김진규 회장은 처음처럼후원회전부터 보육원 봉사를 20년 간 꾸준히 해왔다. 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돕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그. 왜 보육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저는 좋은 부모님을 잘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았거든요. 그건 제가 노력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보육원 아이들은 정반대죠.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열악한 환경에 놓인 거예요. 그저 누군가는 운이 좋았고, 누군가는 운이 나빴다는 말로 일축하기에는 아이들이 살아갈 삶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운이 좋아 가지게 된 것들을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고, 보육원 아이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는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온 후원회 사람들과는 동료애 그 이상의 끈끈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명감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서 힘을 얻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오랫동안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죠. 어떤 일이든 혼자하면 쉽게 지치고 오래 버티지 못하잖아요. 봉사도 똑같아요. 아무리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혼자서 활동하면 오래 지속하지 못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 후원회 선생님들과 도움 주신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제2의 도전

김진규 회장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을 펼칠 예정이다. 바로 카페 사업이다. 바리스타 교육을 비롯해 손님을 상대하고 음료를 판매하는 등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배우고 해볼 수 있는 자리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이 중도 포기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던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다.

11월 오픈 예정인 카페의 이름은 처음커피’. ‘처음처럼후원회이름에서 따왔다.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장소는 서울 상계동 수락산우체국 건물 위층으로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김진규 회장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자금은 모두 그의 자비로 충당했다고. 공간 선정에도 발품을 팔아 심혈을 기울였다.

카페 운영은 그가 직접 한다. ‘처음처럼후원회에서 9년간 줄곧 회계 일을 담당해온 회원이 점장으로 상주할 예정이다. 바리스타 또한 후원회 구성원 중에서 선출할 계획. 정직원으로 뽑을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기존 고등학생 대상수업을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수락산우체국 앞에서 만난 김 회장은 카페가 생길 공간을 직접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던 유휴공간이었다. 한눈에 봐도 손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카페가 생길 거예요. 카페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고 있답니다(웃음). 그동안 하던 일은 그만두고 이 일에 전념하려고요. 왜냐면 아이들이 한껏 기대하고 있거든요. 아이들에겐 꿈과도 같은 공간이니까 카페가 문을 닫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죠.”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9년이라는 시간에 더해질 앞으로의 시간들은 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낼까?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처음처럼후원회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길 응원한다.

·사진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1@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