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직업, 창직 ⑤] 인터뷰 이종란 한국장례메이크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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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직업, 창직 ⑤] 인터뷰 이종란 한국장례메이크업협회 회장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2.28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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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메이크업전문가는‘행복전도사’

1992년 9월 국내 개봉한 영화 ‘마이걸(My Girl)’에 등장하는 쉘리(제이미 리 커티스)의 직업은 장례메이크업전문가다. 영화 개봉 당시 장례메이크업전문가는 이색직업이었다. 하지만 장례메이크업전문가는 더 이상 스크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국내에 장례 메이크업 분야를 개척한 이가 있다. 바로 한국장례메이크업협회 회장 이종란 씨. 그녀를 만나 ‘장례 메이크업’에 대해 들어본다.

▲ 이종란 한국장례메이크업협회 회장[사진=오세은 기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한 이종란 씨는 동료 연기자들의 분장을 도와주다가 메이크업을 시작했다.올해로 메이크업을 시작한 지 35년이 흘렀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입사했다. 그러다 해외 출장을 통해 장례 메이크업 분야를 알게 되었다.

“우연찮게 장례 메이크업 분야를 해외에서 알게 되었어요. 장례메이크업전문가는 고인의 마지막을 단장해 주는 직업입니다. 유족들에게 시신을 보여주기 전 혈색을 되살리고 생전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죠. 고인의 평온한 모습을 보여드림으로써 유족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장례메이크업은 일반 메이크업 제품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굴에 상처 혹은 함몰된 부분이 있을 경우 고인의 생전 사진을 보고 함몰된 부분을 복원 및 연결해주고 왁스 처리를 합니다. 형태를 복원해주는 것이죠. 복원된 얼굴 위에 일반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데 여기에 파운데이션이나 파우더를 섞어 사용합니다.”


그녀는 장례메이크업전문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신감 있게 소개하였다. 하지만 처음 장례 메이크업을 국내에 알리기 시작할 때는 많은 두려움이 많았다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례 메이크업을 소개할 자리가 있었어요. 누워 있는 시신을 대상으로 직접 메이크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죠. 그때 누워있는 시신이 제 팔을 잡아당길 것만 같았어요. 그만큼 겁이 나고 두려웠죠. 그런데 산업재해로 얼굴이 많이 훼손된 시신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죠. 무섭고 두려운 마음보다는 함몰된 고인의 얼굴을 유족들이 본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라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무서움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의 사명감이 들기 시작했죠.”

▲ [사진=본인 제공]

새로운 장례 문화, 장례 메이크업 시장도 확대될 것
전통 장례 문화의 한 축인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2015년 현재 화장률이 80%를 넘기고 있는 것. 또한 고인의 가족과 친지들만이 모여 장례를 치르는 작은 장례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처음 장례 메이크업을 국내에 소개하던 2000년대 초반, 그녀는 이미 이러한 전통 장례 문화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장례메이크업에 대한 이해가 없어 장례 메이크업을 국내에 안착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처음 장례 메이크업을 소개할 때 이 직업이 금세 확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 대학교 상장례지도 수업에서 장례 화장(메이크업)을 소개하니 몸을 태우는 ‘화장(火葬)’으로 이해하시는 분이 많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장례 메이크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어떤 분은 이 분야가 우리나라 장례 문화에 수용이 안 될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죠. 그때 저는 앞으로 수의로 얼굴을 덮는 우리의 장례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장례식장에 가보면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옷을 입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통 장례 문화가 변화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죠. 수의가 변하면 장례 메이크업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레 확대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메이크업 분야에 몸 담아온 그녀는 장례메이크업전문가는 앞으로 틈새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메이크업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현 시점에서 중장년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메이크업 시장은 포화상태에요. 그래서 오랫동안 메이크업을 해온 분들이 젊은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죠. 때문에 중장년층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장례 메이크업을 배우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틈새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널리 확대되고 있어 틈새라고 부를 수 없죠. 그리고 메이크업 전문가뿐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시는 분, 장례지도사분들도 장례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분들은 장례식장 근무가 없는 날 기존 네트워크를 이용해 장례 메이크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메이크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가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장례 메이크업은 메이크업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일까. 그녀에게 장례 메이크업 전문가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다.

“일반 메이크업이 아닌 장례 메이크업을 별도로 배워야 합니다. 장례 메이크업은 크게 장례 뷰티 메이크업, 장례 복원메이크업으로 나뉩니다. 전자는 시신의 얼굴이 훼손되지 않은 경우에 사용되는 메이크업입니다. 후자는 산업재해 등으로 얼굴이 훼손되었을 경우 훼손 부분을 복원하는 메이크업이고요. 일반적으로 장례식장 현장에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고인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장례 메이크업만의 기술이 요구됩니다. 현재 장례 메이크업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신분들 중에 복원 메이크업을 잘 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전문적으로 배워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장례메이크업전문가, 돌아가신 분과 남은 사람의 연결고리 역할
이종란 씨는 처음 장례 메이크업을 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작업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꺼내었다.

“한 고등학생이 고층에서 자살을 했어요. 고층에서 떨어져 얼굴뿐만 아니라 목 주변까지 훼손되었습니다. 저는 고인 나이에 알맞은 메이크업을 해주었어요. 며칠 뒤 고인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장례 메이크업한 아이의 사진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좋은 모습으로 이별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도 하셨죠. 저는 이렇게 고인과 좋은 모습으로 인사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그 인사를 들을 때마다 더 잘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커져요. 그만큼 보람도 큰 직업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녀는 장례메이크업전문가를 ‘행복전도사’라고 말했다.

“저는 이 직업에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정한 기준치에 못 미치면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유족들은 고맙다고 말씀하시지만 스스로의 기대치에 충족하지 못한 날은 매우 힘듭니다. 올해로 장례 메이크업을 17년째 하고 있고 복원 메이크업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을 합니다만 아직도 복원 메이크업은 쉽지 않은 직업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남아있는 분들이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현장에서 이승을 떠난 분과 남은 분이 서로 ‘안녕’이라 인사하며 잘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또 일정부분 그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직업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전도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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