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신직업⑤] 현대사회는 컴퓨터가 더해진 ‘문방오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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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신직업⑤] 현대사회는 컴퓨터가 더해진 ‘문방오우’ 시대!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7.08.24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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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상현 캘리그래퍼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움을 뜻하는 ‘캘리’와 글쓰기를 뜻하는 ‘그래피’의 합성어다. 하지만 근본은 서예에 있다. 캘리그래피를 취미로 삼거나 전문 교육자로 나선 이들의 공통점은 글씨를 씀으로써 힐링을 얻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캘리그래피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만 10년 전 캘리그래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고,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 캘리그래퍼 1세대 이상현 씨 를 만나 ‘캘리그래퍼’의 지난 10년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들어본다.

▲ 이상현 캘리그래퍼[사진=이상현 씨 제공]

장난 끼 가득했던 꼬마 이상현이 처음 붓을 잡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항상 산만한 모습에 침착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부모님 권유 때문.
“부모님께서 항상 주위가 산만한 저를 서예학원에 보내셨어요. 서예를 배우면 조금 차분해지지 않을까 해서 그러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학원 첫날 흰 벽에 검은색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붓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당연히 혼 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예 선생님께서는 제게 흰 벽을 까맣게 칠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한 곳에 5분 이상 앉아 있지 못했던 제가 벽을 까맣게 칠하기 위해 2시간 이상 제 자리에서 먹을 갈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합니다(하하).”

‘글씨에 감성의 옷을 입히는 일’
꾸짖음이 아닌 칭찬으로 보듬었던 서예 선생님은 현재 이상현 씨의 은사님이다. 이후 선생님 추천으로 서예대회에 나가 여러 번 수상도 했다. 장난만 칠 줄 알았던 꼬마는 자신도 무언가를 시작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대학도 서예학과로 진학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가 좋아하는 서예를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예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야 했죠. 서예를 외국어로 바꾸면 ‘캘리그래피’에요. 디자인회사를 찾아다니면서 캘리그래피를 소개했어요. 그런데 많은 디자이너들이 타이포그래피는 알지만 캘리그래피는 모르더라고요. 같은 ‘그래피’인데 캘리그래피는 처음 들어본 거죠. 그때가 1999년도였습니다.”

그는 2000년대 초 디자이너들에게 ‘글씨에 감성의 옷을 입히는 일’이 캘리그래피라고 소개했다. 디자이너들이 처음엔 그리 신뢰하지 않았지만 곧 받아들여줬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캘리그래피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고 판단한 건 책 겉표지에 캘리그래피가 많이 사용되면서입니다. 캘리그래피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는 걸 보고 이제는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무대’를 떠올렸어요.”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그림 그리는 활동은 이전에 있었다. 하지만 붓글씨 퍼포먼스를 선보인 건 이상현 씨가 처음이다.

문자가 있는 한 ‘캘리그래퍼’ 사라지지 않아
최근 캘리그래피를 취미로, 그리고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분야든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닐 터. 글쓰기 세월만 33년을 보낸 그에게 캘리그래퍼 생태계에 대해 물었다.
“지난 10년과 비교해봤을 때 ‘캘리그래퍼’라는 직업이 지금은 자리를 잡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직업은 정기 급여생활자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수입도 안정적이지 않죠. 작업 환경은 10년 전과 많이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 이상현 씨 작품[사진=이상현 씨 공식 사이트 화면 캡처]

그는 대중들에게 캘리그래피가 많이 알려지고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많아져 기쁘지만, 한편으론 캘리그래피가 상업적으로 부각되면서 서예 본래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글씨를 파는 상업 서예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길은 아닙니다. 지금 시대는 한 가지만 잘 해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캘리그래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방사우 하나로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시킬 수 없죠.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컴퓨터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오고 있어요. 문방사우에 컴퓨터를 접목해 미디어아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평면에 나무를 그리고 그 위에 컴퓨터로 만든 나비를 날아들게 하는 것이죠.”

이렇게 ‘문방오우’ 시대를 선언한 그는 시류에 뒤처지지않기 위해서 자신만의 ‘칼’을 갈고 닦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에게 캘리그래퍼 직업 전망에 대해 물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캘리그래퍼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금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한 분들이 캘리그래퍼 길은 배고프다고 말씀하세요. 당연합니다. 캘리그래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기적인 수입이 있지 않습니다. 캘리그래피의 부가가치는 붓글씨 예술이 산업과 소통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씨를 잘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좋은 작업물을 통해 하나의 산업과 소통할 수 있는 ‘작가’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치킨회사가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에 맞는 글씨를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기업의 이념과 소비심리 등을 캘리그래퍼는 알아야 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는 이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2년정도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이 정도 배웠는데 왜 수입이 안늘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는 33년 동안 글씨를 썼고 캘리그래피는 올해로 18년째입니다. 18년이라는 세월을 지냈기 때문에 그만큼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많이 쓴 사람, 많이 고민한 사람이 캘리그래퍼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쉬지 않고 작업하면 그만큼 보상과 대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캘리그래피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예술이라 좋지만, 많이 사랑받을수록 서예정신을 잇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캘리그래피를 알리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던 그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고 한다. 다음 목표는 캘리그래피를 통해 ‘한글과 아리랑’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캘리그래퍼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현실적 조언을 청했다.
“돈을 벌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씨가 좋아서 쓰다 보면 돈이 벌리는 직업이 ‘캘리그래퍼’ 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한 번 미치도록 끝까지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ㅣ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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